시로 여는 일상

임재정 내연기관들

생게사부르 2018. 12. 4. 19:29

내연기관들


                                                임재정


1.
둘을 손잡게 한 것은 난로였어요 불이 탈때 빈방은 부
풀죠 내가 당신을 땔감으로 쓸 동안
빈 방이라는 것은 누군가 머무른 적이 있기 때문

2.
기적처럼 들끓는 난로
나는 불꽃을 손질하죠 불꽃은 반대편을 일으키고 당신
을 마주 앉힙니다 끊임 없는 관심이 필요한 주전자의 투정
따위를 귀담지는 않아요 부글거리는 점괘 속의 미래도 관
심 밖이랍니다
다만 우린, 엉길 그을음을 손사래 치고 싶을 뿐

3.
펄펄 끓는 아이의 이마, 부적처럼 당신은 말이 없어요
내 얼굴과 당신 혀를 가진 아이는 만능열쇠가 아니에요 아
이 이마에서 우린 계획적으로 어긋납니다

4.
그냥, 그런데 왜요? 오믈 우리는 존칭을 씁니다 예의는
거리 유지에 적당한 장치, 불꽃이 남긴 그을음을 찍어

각자의 이름을 써요 그을음으로
그을음을, 그리곤 등을 보이죠
은 주전자가 난로 위에 체기 같습니다 찻잔을 깬 것이

딱히 나빴던 건 아니었어요 마시려던게

서로 다르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5.

난로에 내밀던 네개의 손을, 빈방을 삼킨다 그런식이

다 가끔은 머뭇대며 전화를 들고 수화기 속 아이를 기다리

다 시무룩 해지기도 한다 우린 앞으로 퇴보하는 생을 즐길

것이다

 

 

뭉턱, 뒤로 천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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