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이듬 12월

생게사부르 2018. 12. 7. 19:45

12월 

                           김이듬



 

저녁이라 좋다
거리에 서서
초점을 잃어가는 사물들과
각자의 외투 속으로 응집한 채 흔들려 가는 사람들
목 없는 얼굴을 바라보는 게 좋다
너를 기다리는 게 좋다
오늘의 결심(決心)과 망신(亡身)은 다 끝내지 못

할 것이다

미완성으로 끝내는 것이다

포기를 향해 달려가는 나의 재능이 좋다

나무들은 최선을 다해 헐 벗었고

새떼가 죽을 힘을 퍼덕거리며 날아가는 반대로

 

봄이 아니라 겨울이라 좋다

신년이 아니고 연말, 흥청망청

처음이 아니라서 좋다

이제 곧 육신을 볼 수 없겠지

움푹 파인 눈의 애인과 창백한 내 사랑아

 

일어나라 내 방으로 가자

그냥 여기서 고인물을 마시겠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널 건드려도 괜찮지?

숨 넘어 가겠니? 영혼아,

넌 내게 뭘 줄수 있었니?

 

 

                 - 말 할 수 없는 애인.

                    2011.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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