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들
임재정
1.
둘을 손잡게 한 것은 난로였어요 불이 탈때 빈방은 부
풀죠 내가 당신을 땔감으로 쓸 동안
빈 방이라는 것은 누군가 머무른 적이 있기 때문
2.
기적처럼 들끓는 난로
나는 불꽃을 손질하죠 불꽃은 반대편을 일으키고 당신
을 마주 앉힙니다 끊임 없는 관심이 필요한 주전자의 투정
따위를 귀담지는 않아요 부글거리는 점괘 속의 미래도 관
심 밖이랍니다
다만 우린, 엉길 그을음을 손사래 치고 싶을 뿐
3.
펄펄 끓는 아이의 이마, 부적처럼 당신은 말이 없어요
내 얼굴과 당신 혀를 가진 아이는 만능열쇠가 아니에요 아
이 이마에서 우린 계획적으로 어긋납니다
4.
그냥, 그런데 왜요? 오믈 우리는 존칭을 씁니다 예의는
거리 유지에 적당한 장치, 불꽃이 남긴 그을음을 찍어
각자의 이름을 써요 그을음으로
그을음을, 그리곤 등을 보이죠
식은 주전자가 난로 위에 체기 같습니다 찻잔을 깬 것이
딱히 나빴던 건 아니었어요 마시려던게
서로 다르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5.
난로에 내밀던 네개의 손을, 빈방을 삼킨다 그런식이
다 가끔은 머뭇대며 전화를 들고 수화기 속 아이를 기다리
다 시무룩 해지기도 한다 우린 앞으로 퇴보하는 생을 즐길
것이다
뭉턱, 뒤로 천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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