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단풍 시 이윤학, 안도현, 이우걸

생게사부르 2018. 11. 17. 08:25


가을 단풍나무
  

 

                               이윤학


너는 오랫동안 달려왔구나
너는 숨차게 달려 왔구나
너는 온 몸으로 열병을 앓았구나.
너는 앙상한 뼈대 위에
붉디 붉은 숨결 실어 올렸구나

멀찌감치 떨어져 보니
이파리 사이사이
붕 뜬 공간까지
네 빛으로 채우고 있었구나.

지켜 보는 이 마음 속까지
사로 잡고 있었구나
사로 잡혀 있었구나

 

 

 

 단풍나무 
                         

                         안도현

                                                 

 

둘러봐도, 팔장 끼고 세상은 끄떡 없는데
나 혼자 왜 이렇게 이마가 뜨거워지는가
나는 왜 안절부절 못하고 서서
마치 몸살 끝에 돋는 한기寒氣처럼 서서
어쩌자고 빨갛게 달아 오르는가
너 앞에서, 나는 타 오르고 싶은가
너를 닮고 싶다고
고백하다가 확, 불이 붙어 불기둥이 되고 싶은가
가을 날 후미진 골짜기마다 살 타는 냄새 맑게 풀어 놓고
서러운 뼈만 남고 싶은가
너 앞에서는 왜 순정파가 되지 못하여 안달복달인가
나는 왜 세상에 갇혀 자책의 눈물을 뒤집어 쓰고 있는가
너는 대체 무엇인가
나는 왜 네가 되고 싶은가


단풍나무 한 그루


너 보고 싶은 마음 눌러 죽여야겠다고
가을 산 중턱에서 찬비를 맞네
오도가도 못하고 주저앉지도 못하고
너하고 나 사이에 속수무책 내리는
빗소리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동안
이것 봐,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
단풍나무 혼자서 온몸 벌겋게 달아오르네



단풍물

 

 

                            이우걸 



가을에는 다 말라버린 우리네 가슴들도
생활을 눈감고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누구나 안 보일 만치는 단풍물이 드는갑더라

소리로도 정이 드는 산 개울가에 내려
낮달 쉬엄쉬엄 말없이 흘러보내는
우리 맘 젖은 물 속엔 단풍물이 드는갑더라

빗질한 하늘을 이고 새로 맑은 뜰에 서 보면
감처럼 감빛이 되고 사과처럼 사과로 익는
우리 맘 능수 버들엔 단풍물이 드는갑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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