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란
모르는 사이
당신은 말이 없는 사람입니까 이어 폰을 꽂은 채 줄곧 어슴푸레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군요 당
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태운 7019번 버스는 이제 막 시립은평병원을 지났습니다 광화문에서부터 우리는 나란히 앉아 왔지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눈을 준 이 저녁이 조금씩 조금씩 빛으로 물들어 간다고
건물마다 스민 그 빛을 덩달아 환해진 당신의 뒤통수를 나는 몰래 훔쳐 봅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입니까 당신은
오늘 낮에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가득한 광장을 혼자 걸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그 곳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 적이 있지요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악수를 나누고서 황급히
돌아 선 적이 있지요
나는 슬퍼집니다 당신은 곧 벨을 누르고 그렇고 그런 약속처럼 버스는 또 멈출테지요
나는 다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변덕스러운 오늘의 날씨와 이 도시와 도시를 둘러싼 휘휘한 공기에 대해
당신 무릎 위 귀퉁이가 해진 서류 가방과 손끝에 묻은 검뿌연 볼펜 자국에 대해
당신은 이어 폰을 재차 매만집니다 어떤 노래를 듣고 있습니까
당신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 그 노래를 나도 좋아합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문이 열립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 난 당신이 유유히 문을 나섭니다 당신의 구부정한 등이
저녁의 미지 속으로 쓸려 갑니다
우리는 헤어집니다 단 한 번 만난 적도 없이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
* * *
참 흔한 풍경,
여기 詩의 공간은 버스지만 서울서 지하철을 타면 누구없이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앉은 모습을 보게 된다
익명의 섬에서 타인들과 공존하는 현대인의 모습이긴 한데... 조금 슬프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잘 못하면 시선 만으로도 강간이되기도 해서 눈 감고 귀 막은...
연일 뉴스를 타는 성 추행, 은밀한 동영상 촬영은 대다수 성인 남성을 가해자로,
여성을 피해자로 움츠리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범죄수준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더 많이는 그냥 선량한 우리의 자매 형제들이다
아버지고, 남편이고 아들이며
아내이기도 하고 어머니며 딸인데
이어 폰 꽂고 음악 듣고 있는 풍경이야 흔하지만
폰 들여다 보고 혼자 웃고 있는 사람들 보면... 뭐랄까
현재 공간에서 옆에 실재하는 사람은 타인이고, SNS 상의 지인과 소통하는 ...
이전 라디오나 T V 처음 나와서 그 원리를 잘 몰랐을 때 그 작은 상자 안에 난장이 사람이 있다고
생각 한 것 처럼 사람이 아닌 기계와 노는 시간이 많은 현대인
누구와 어떤 내용으로 소통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보는 사람은 유령이고 자신과 무관하기에
무심하고 ...특히 남성인 경우 여성과 웃음의 코드가 다르기도 할 테고
이어 폰을 꽂고 옆사람과 대화를 하게 될 경우 목소리가 크서 옆에 있는 사람들은 깜짝 놀라기도 하고
네가 나고 내가 너이기에 그려르니 하고 대부분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그런 상황이 공공 장소에서 잘 못 부딪치면 사건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주변인들에게 ' 완벽한 타인' 영화 얘기를 들었는데
이나라 저나라 해외판이 있는 걸 보면
매일 부딪치고 만나면서'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 인 현대인들의 일상
사실 나도 이런 상황에 대해 늘 낯설어 하는 편이면서... 또 으레 그런 사회거니 하고 당연시 한다
'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을 알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도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현숙입니다. '
사회적 연대로 관계하고 소통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과
' 아닙니다. 여지 껏 모르고 살아 왔는데 새삼 아는 사람을 늘리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사세요. 저는 제 삶을 살겠습니다. 불필요한 관심은 사양합니다.'
끊임없이 불화하는 양가감정 ㅠ ㅠ
.
.
.
.
.
.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광고지(發狂高地) 서윤후 (0) | 2018.11.15 |
---|---|
장옥관 돌에 입 닦고 잠드는 뱀처럼 (0) | 2018.11.14 |
김이듬 내 눈을 감기세요 (0) | 2018.11.11 |
이성복 11월 (0) | 2018.11.10 |
나희덕 내 것이 아닌 그 땅위에 (0) | 2018.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