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장옥관 돌에 입 닦고 잠드는 뱀처럼

생게사부르 2018. 11. 14. 16:39

돌에 입 닦고 잠드는 뱀처럼 / 장옥관 

 

 

뱀은 동면에 들어가기 전에 몇 번이나 허물을 벗는다고 해

벗은 허물 머리 부분은 꼭 제가 먹는다지

옛사람들 그 허물 머리 부분을 거둬 쌀뒤주 아래 두려 했다는 거야

   허물 다 벗은 뱀은 돌에 입을 닦는데,
   입 닦은 돌에 입을 대면 동지섯달 겨우내 밥 먹지 않아도 배고
픈 줄 모른다는 거야
   배고파보지 못한 사람은 정녕 모를 거라, 그게 엄마나 끔찍한
일인지 몸은 염치가 없어

 

   뱀이 입 닦은 돌 구하려는 건

   다석 선생*처럼 밥 안 먹고도 살 방도 찾자는 게 아니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는 거야 왜 그런광고 있었잖아 새해 첫 날에 귀

엽고 어여쁜 탤런트가 손나발 대고' 부자 되세요오오' 소리치던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르더라

부자가 얼마나 좋기에 그 드물다는 뱀 허물이나 입 닦은 돌 구

하려는 걸까 뱀이 되고 싶다 그거잖아 뱀이되어

   늘 축축한 구멍이나 파고 싶다는 거잖아 

 

  하지만 뱀이 돌에 입을 닦는 건

  염치없는 입 달래기 위해서가 아닐까 제 머리 허물 먹는 건 잡

념 잡풀 속 쓰레기더미 누가 볼까봐 얼른 먹어치우는 것일테고

 

  그게 염치를 아는 거지 그래, 나는 뱀이 되고 싶어, 이슬에 몸

씻고 돌에 입 닦는 뱀

 

 

* 류영모(1890-1981) 선생의 호 다석(多夕)은 저녁(夕) 한끼만 먹어도 많다(多)는

뜻이다.

 

 

         *       *       *

 

 

동면에 들기 전 허물을 다 벗은 뱀이 입을 닦을 만한 돌이라...

 

나무나 수석 같은 거

자연에 있는 건 그대로 두고 함께 보는 게 좋지 않나 하는 소박한 생각인데

하물며 뱀이 입 닦은 돌이라...

평생 못 보고 죽겠네요.   

 

국화 축제 기간에 수석 전시한 것들 한 번씩 보게 됩니다.

감탄할 만한 작품들이 많더군요.

 

제가 시를 좋아 하는 것처럼 그 분들은 그 일이 즐겁고 좋을테지요.

그래서 저 처럼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구경도 할 수 있도록 해 주니 고맙지요.

 

' 부우자 되세요오오 '

부자가 얼마나 좋기에...그러게요. 그 부자가 한번 되어 봤어야 좋은 줄 알고 공감할텐데

 

' 살림 좀 나아지셨습니까?' 도 있었고

심지어 한나라 대통령이 그것도 신년 공식 행사였지 싶은데 ... ' 통일 대박' 하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 자리 저 행사에서는 좀 아닌데...

 

'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르더라'

 

누가 ' 부자되기 싫은 사람 어딨어, 괜히 가식 떠는 거지...' 하고 욕해도 할 말이 없지만

살아가면서 지향점이 어디냐에 따라 선택의 우선 순위는 분명 있거든요.

 

' 뱀이 돌에 입 닦는 건 염치없는 입 달래기 위해서가 아닐까...'

사람이야 말로 수치나 염치를 모르면 사람이기 어렵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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