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이듬 내 눈을 감기세요

생게사부르 2018. 11. 11. 18:34

내눈을 감기세요 / 김이듬


  구청창작교실이다. 위층은 에어로빅 교실, 뛰고 구르며 춤추는 사람들, 지붕 없는 방에서 눈보라

를 맞는다 해도 거꾸로 든 가방을 바로 놓아도 역전은 없겠다. 나는 선생이 앉는 의자에 앉는다.

과제검사를 하겠어요. 한 명씩 자신이 쓴 시 세편을 들고 와 내 책상 맞은편에 앉는다. 수강생과

나는 머리를 맞댄다. 어깨를 감싸는 안개가 있고 나는 연달아 사슴을 쫒아가며 총을 쏘는 기분이

다. 전쟁을 겪은 후 나는 총을 쏘지 못하게 되었다

 

  이건 너무 상투적이고 진부하잖아요. 이렇게 쓰시면 안 됩니다. 노인이 내민 시에 칼질을 한다. 깎

고 깎여서 뼈대만 남은 조각상처럼 노인은 앉아 있다. 패잔병의 앙상한 뺨을 타고 곧 눈물이 흘러

내릴 것 같다. 분노로 불신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아니다. 선생님, 방금 그 작품은 내가 쓴게

아닙니다. 아무리 애써도 시를 쓸 수가 없어 유명한 시인의 수상작품을 필사해 봤어요

 

  내 머리는 떨어진다. 책상 위에는 첨삭하느라 엉망이 된 유명시인의 작품이 있다. 그것은 마치

왜 비싼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명품브랜드 가방 같다. 노인이 나를 보며 웃지 않으려 애쓴다.

위에서 춤추는 사람들, 이름을 가리면 못 알아보는 내 식견으로 누구를 가르치겠다고 덤빈 걸까?



                                                                            - 히스테리아. 2014. 문지

 

 

*         *          *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국 구석구석,  대학교 평생교육원, 구청, 시청, 지역 주민센터 ,도서관 같은 곳에서

시인들이 시 창작교실을 열고 있습니다.

심지어 글자를 익히지 못했던 할머니들을 모아 놓은 문해교실에서도 시를 쓰지요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에서 시를 읽고 쓰는 분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하늘의 별만큼 많은 시인과 가수

하늘의 별보다 많은 시와 노래가 아닐지

 

사실 유명한 시인의 시집을 사서 읽어도 그 시집에 실린 시 전 편이 하나같이 다 좋다고 하기는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음반도 마찬가지고요. 음반 전체에 실린 음악 중에  몇 곡이 좋은 것이지요.

 

 

우리 창작실도 마찬가집니다. 써 온 작품을 읽고, 합평하고 여지 없이 짤려 나가고, 새로 쓰고의 반복입니다.

사십대도 있고 칠십대도 있고 대부분 등단을 하신분들이며 시집을 한 두권씩 낸 분들이고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등단은 하지 않았지만 시 창작에 대부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기에 본인 스스로

이미 시인이라 생각합니다. ㅎ

 

위 시에서 우리는  칼질에 깎이고 깎여 나가 뼈대만 남은, 패잔병 같은 노인 입장입니다만

자신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니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시작을 하는 우리들이 한번씩 짧은 소품을 써 오기도 합니다

소품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있을 수 있지만 시작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시를 끌고 가는 힘을 기르기

위한 수련과정이니 어느정도 길이가 되어야 합니다만

우리끼리 한번씩 농담을 합니다.

유명한 시인 ' 누구' 가 썼으면 좋은 평가를 받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써서는 역량부족이라고

앞으로 유명 해 지고 나면 그렇게 쓰도된다고 말이지요.

 

일단 시는 창작물이고 사람인 시인이 쓰는 것이며 사람은 제 각기 개성이나 특성이 달라서 시인들도 선호하는 시풍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춘문예에 작품을 제출하는 사람들도 그 신문사에 혹은 그 잡지는 누가 심사를 하는지 정보에 민감하기도 하고요 

 

유명한 시인이고 이름 있는 문학상까지 받은 작품일 지라도 당연히 못 알아 볼 수 있을테고 첨삭을 하고

칼질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 왜 비싼지 도무지 이해를 할수 없는 명품브랜드 가방 같다'

요는 ' 브랜드' 값 그렇지요. 아파트도 차도 옷도...

 

 

' 이름을 가리면 못 알아보는 내 식견으로 누구를 가르치겠다고 덤빈 걸까? '


눈으로 보이는 상품도 그러한데 하물며 보이지 않는 문학, 예술 창작물은 오죽 하겠습니까

평가하고 우열을 가리고 심사를 하고 ...

그렇지만 어떻든 다수에게 소통이 되는 ' 좋은 작품'을 창작하면 사랑을 받으니까

좋은 시를 쓸 때까지 노력하는 수 밖에 없지요.

 

시인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제도권에서 그 중 공부를 많이 하신분들은 당연히 대학교수입니다. 가르치는 일과 연구와 창작을 함께 병행해야 하는,

그 다음 학교 교사인 분들, 언론이나 방송일에 종사하시는 분, 회사나 관공서 홍보 일 하시는 분,

문학관이나 도서관 같은 직장을 가진 분, 그래도 정규직업을 가지신분은 생활은 안정적입니다만 매이는 직업인 관계로

자유롭게 창작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단점.

 

    대신 시 쓰는 일이 전업인 분들은 글만 써서 현대사회를 살아나가기 참으로 힘든...

 

김이듬 시인도 박사까지 수료한 것으로 아는데 

' 이듬책방'이 수익성을 위한 경영이나 운영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시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다수 후원을 하면 좋을, ' 시'를 매개로 한 소통이나 만남의 공간이란

의미가 강하겠네요.

 

김이듬 시인은 시 잘 써서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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