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나희덕 내 것이 아닌 그 땅위에

생게사부르 2018. 11. 8. 23:29

내 것이 아닌 그 땅 위에


나희덕


주춧돌은 어디에 놓을까
이쯤에 집을 앉히는게 좋겠군
지붕은 무엇으로 얹을까
벽은 아이보리 색이 무난하겠지
저 회화나무가 잘 보이게
남쪽으로 커다란 창을 내야겠어
동백 숲으로 이어진 뒤뜰에는 쪽문을 내야지
여기엔 자그마한 연못을 팔거야
곡괭이를 어디에 두었더라
돌담에는 마삭줄과 능소화를 올려야지
앞마당에는 무슨 꽃을 심을까
대문에서 현관까지 자갈을 깔면 어떨까
소리만 들어도 누가 오는지 알 수 있을테니까
저 은행나무 그늘에는
나무 의자를 하나 놓아야지
그래도 식탁은 둥글고 큼지막한게 좋겠어
벌써 문 밖에 누가 찾아온 모양이군

오늘도 집을 짓는다
내 것이 아닌 그 땅위에, 또는 허공에
생각은 돌담을 넘어
집터 주위를 다람쥐처럼 드나든다
집을 이렇게 앉혀보고 저렇게 앉혀보고
수없이 벽돌을 쌓았다 허물며
마음으로는 백번도 넘게 그 집에 살아 보았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닌 그 땅에는
이미 다른 풀과 나무들이 자라고 있지 않은가

 

 

*       *        *

 

 

중학생 시절, 기술 시간이었나요.

요즘 아파트 홍보전단지에 나오는 건축 평면도 같은 거 공부 하다가

미래 자기가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해서 그려 보라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어요.

아이들이 여중생다운 꿈을 펼치기 시작 했지요. 설계도 보다는 주로 입으로 수다를 더 많이

떨었달까요.

정원을 꾸미고 연못을 파고 금붕어를 키우고...

 

전 좀 황당했어요. 상상력이 없달까

미래 자신의 집 꾸미기에 들떠 있는 아이들을 신기하게 구경했던 기억만 나네요.

 

사람 이외 대상물에 대해 관심이 없고 무심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야 그런 관심이 좀 생겼는데..글쎄요. 집도 가꾸고 손질하는 취미를 가져야지 예쁘게 유지 할수 있을 텐데

이렇게 컴퓨터 압에 앉아 있고, 시나 뒤적이면서 입에 풀칠만 겨우 하고 있어서야

누가 집을 준대도 멋진집에 살 자격이 없는 것 같으네요.

바닷가에 강가에 산골짜기에 상상으로 집 짓는거야  하루에 열채라도 쉽게 지었다 부수었다 하지요.

하지만 현실은 제 손으로 직접 개집 한개라도 지어보지 않으면 아무 필요가 없다는 거

 

시인의 마음이 제 맘입니다만

내 것이 아닌 그 땅위에 이미 풀과 나무가 차지하고 있답니다.

 

아니래도 좁은 땅 덩어리

그나마 잠깐 빌려살고 있으면서

 

부동산이나 아파트 투기는 물론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면서 ' 땅이 곧 副' 라는 사고방식에 멍들어

미래를 꿈꾸기 어려워진 우리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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