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정끝별 은는이가

생게사부르 2018. 11. 6. 01:10

은는이가


정끝별


 

당신은 당신 뒤에 ' 이(가)'를 붙이기 좋아하고
나는 내 뒤에' 은(는)'을 붙이기를 좋아한다
당신은 내'가' 하며 힘을 빼 한 발 물러서고
나는 나'는' 하며 힘을 넣어 한 발 앞선다
강'이' 하면서 강을 따라 출렁출렁 달려가고
강'은' 하면서 달려가는 강을 불러세우듯
구름이나 바람에게도 그러하고
산'이' 하면서 산을 풀어놓고
산'은' 하면서 산을 주저앉히듯
꽃과 나무와 꿈과 마음에게도 그러하다
당신은 사랑'이' 하면서 바람에게 말을 걸고
나는 사랑'은'하면서 바람을 가둔다
안 보면서 보는 당신은'이(가)'로 세상과 놀고
보면서 안 보는 나는 '은(는)'하면서 세상을 잰다
당신의 혀끝은 멀리 달아나려는 원심력이고
내 혀끝은 가까이 닿으려는 구심력이다
그러니 입술이여, 두 혀를 섞어다오
비문(非文)의 사랑을 완성해다오.

 

 

*      *      *

 

 

언년이 어감에

조사 '이(가)'와 ' 은(는)'을 가지고 이렇게 시를 완성하다니

 

산'이' 하면서 산을 풀어놓고
산'은' 하면서 산을 주저앉히고
.
사랑'이' 하면서 바람에게 말을 걸고 
사랑'은'하면서 바람을 가두고

 

조사를 가르치다가 쓴 시라는데

참으로 말을 부리는 달인의 경지다

시를 잘 쓰는 것과 국어국문 공부를 많이 한다는 건 별개지만

이론이 탄탄하기로는 이 시인을 따라 갈 사람이 잘 없는 듯 싶다 

 

이렇게 시를 잘들 쓰는데

왜케 나는 (우리는) 안 써 지냐고

화요일마다 가슴을 치다 온다

마음만 앞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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