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강연호 건강한 슬픔

생게사부르 2018. 11. 3. 19:40

강연호


건강한 슬픔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랜만이란 안부를 건넬 틈도 없이
그녀는 문득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그저 침묵했다
한 때 그녀가 꿈꾸었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아니었다
나도 그 때 한 여자를 원했었다 그녀는 아니었다
그 정도 아는 사이였던 그녀와 나는
그 정도 사이였기에 오래 연락이 없었다
아무데도 가지 않았는데도 서로 멀리 있었다

전화 저쪽에서 그녀는 오래 울었다
이쪽에서 나는 늦도록 침묵했다
창문 밖에서 귓바퀴를 쫑긋 세운 나뭇잎들이
머리통을 맞댄 채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럴 때 나뭇잎은 나뭇잎끼리 참 내밀해 보였다
저렇게 귀 기울인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로
바람과 강물과 세월이 흘러가는 것이리라
그녀의 울음과 내 침묵 사이로도
바람과 강물과 세월은 또 흘러 갈 것이었다

그 동안을 견딘다는 것에 대해
그녀와 나는 무척 긴 얘기를 나눈 것 같았다
아니 그녀나 나나 아무 얘기도 없이
다만 나뭇잎과 나뭇잎처럼 귀 기울였을 뿐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그녀가 나 보다는 건강하다는 것
누군가에게 스스럼 없이 울음을 건넬수 있다는 것
슬픔에도 건강이 있다
나는 이윽고 전화를 끊었다
그제서야 나는 혼자서 깊숙히 울었다

 

 

*       *        *

 

 

 

시인의 말대로 ' 건강한 슬픔'이 있지요

누군가에게 스스럼 없이 울음을 건네거나

속 깊은 얘기를 밖으로 드러낸다는 것

 

의식했든 못했든 그 약효는 위안이 되고 치유가 되기도 합니다

 

건강하지 못한 슬픔은 표현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앓다가 그 슬픔에 야금야금 몸과 정신이

갉아 먹히는 것일터.

 

 

이성이라고 꼭 연인이고 애인이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젊은 시절부터 오랫 동안 실험(?) 해온  ' 이성 친구' 나 ' 이성 동료' 어떤가요?

이성친구나 이성동료는 제대로 유지만 된다면  ' 연인, 애인' 과는 또 다른 폭 넓은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매우 가변적이어서 그런 관계는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위 시에서와 같은 관계라면 ' 이성친구' 라 할 수 있겠네요.

오래 연락이 없었고 아무데도 가지 않았지만 서로 멀리 있었다고 하니 고만고만한 정도의 인연

하지만 전화를 해서 울음을 터트리고 오래 들어 주고 할 정도의 남자 친구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을 보면서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동성애 남자친구가 있는 것도 참 괜찮겠다고 여긴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남자는 동성애 여자친구인 셈이지만...

 

연인과 친구관계의 경계가 아슬아슬한 이성간 친구

우리나이대 우리문화에서는 참  유지하기 어려운 관계였는데요

요즘 신세대가 얘기하는 ' 여자 사람친구' ' 남자 사람친구' 가 그런의미일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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