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소유 오, 어쩌면 좋아

생게사부르 2018. 11. 4. 22:21

박소유


오, 어쩌면 좋아


뼈만 남은 사연이 함께 굴러갈 동안
바퀴 따라가는 생은 모두 급하네
벼락 같은 속도를 얻었으니
저게 모두 발자국이라면 내 발자국도 흔적 없을 터
차라리 눈발이거나 서릿발같이
가볍거나 아득했으면 좋겠네

구부러진 노인이 오그라든 유모차를 밀며 가네
서둘러 당도할 곳이 있기나 한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요란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데
가만 보니 소리만 있고 동작이 없네
고비마다 손발 떼어주고 오장육부 다 내주고
어느 밤중 깜빡 잠들어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르고
둘, 둘, 굴러 집 찾아가는 엄마들
똑 같은 표정, 똑 같은 모습으로 지나가네

어쩌면 좋아,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멀어지네
내가 던진 감탄사를 꽃이 알지 못하듯
가볍고 아득한 이 온기를 알려나 몰라
어둠은 지나간 모든 것들의 그림자,
지나가는 슬픔인 줄 알았는데 내 것인가?
오,오,오,오, 둥글게 굴러가네


 

 

사진 출처 ryan (greenb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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