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민왕기 아늑

생게사부르 2018. 11. 2. 08:12

아늑


민왕기



쫒겨 온 곳은 아늑했지, 폭설 쏟아지던 밤
깜깜해서 더 절실했던 우리가
어린 아이 이마 짚으며 살던 해안海岸 단칸방
코앞까지 밀려 온 파도에 겁먹은 당신과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삭이던,
함께 있어 좋았던 그런 쓸쓸한 아늑

아늑이 당신의 늑골 어느 안쪽일 거란 생각에
이름 모를 따뜻한 나라가
아늑인 것 같고, 혹은 아득이라는 곳에서
더 멀고 깊은 곳이 아늑일 것 같은데
갑골에도 지도에도 없는 아늑이라는 지명이
꼭 있을 것 같아
도망온 사람들 모두가
아늑에 산다는, 그런 말이 있어도 쫗을 것 같았던

당신의 갈비뼈 사이로 폭폭 폭설이 내리고
눈이 쌓일수록 털실로 아늑을 짜
아이에게 입히던 그런 내밀이 전부였던 시절
당신과 내가 고요히 누워 서로의 곁을 만져보면
간간한, 간간한 온기로
사람의 속 같던 밤 물결칠 것 같았지

포구의 삭은 그물들을 만지고 돌아와 곤히 눕던 그 밤
한쪽 눈으로 흘린 눈물이
다른 한쪽 눈에 잔잔히 고이던 참 따스했던 단칸방
아늑에서는 모두 따뜻한 꿈을 꾸고
우리가 서로의 아늑이 되어 아픈 줄 몰랐지
아니 아플 수 없었지

 

 

 

*      *      * 

 

 

날씨가 추워지네요.

겨울나기 위하여 김장을 하고 땔감을 준비해 쌓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런 준비는 산골이나 귀촌해 사는 분들 중에도 일부만  필요하지 않을지 싶네요

이를테면 ' 나는 자연인이다 '에 나오시는 분들 중에도 전기나 보일러 혜택을 받지 않고 (혹은 받지 못하고)

사시는 분들...

 

산촌이든 적막한 바닷가든 ' 아늑'한 온기가  그리운 계절이 다가 옵니다.

 

물리적인 온기보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스한 온기가 더 필요 한 것 아닌지

저 부터 반성이 됩니다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적당히 알았던 시절

' 아득' 해서 ' 아늑' 했던 그 틈,

 

모나리자의 그림을 보고 그 주인공의 정서를 컴퓨터로 분석해서 읽어내곤 하네요

쓸데없이, 조금은 비밀스러운 구석을 두어도 괜찮은데 말입니다

 

신선하고 매사 호기심이 넘쳤던 시절이 있었는지조차 의심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나이에 상관 없이 ' 삶' 이 뻔하다고 느끼게 되는 순간이 늙는 순간이라더니

 

시린 계절이 다가 옵니다.

어떤 방법이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고 맘을 합하여 건강하고 즐거운 겨울 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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