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성윤석 오징어

생게사부르 2018. 9. 6. 13:04

성윤석


오징어



선동이란 말은 배에서 바로 얼렸다는 거다 집어등
을 달고 바다로 나가는 오징어잡이 배들은 불빛을
보고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는 오징어 떼들을 보
면 환장한 슬픔이 거기에 있다는 거다 바닷속을 다
뒤져도 없을 밝고 희고 눈부신 꽃들이 바닷속에서
휘날린다는 거다 그 슬픔들의 휘날림에 자기도 모
르게 선원 하나가 스르륵 바다로 빨려 들어가도 바
다와 배 사이에는 적막이 조용히 오갈 뿐 수면 내시
경으로 바다 밖으로 떠오르는 오징어 떼들에겐 배에
달린 집어등 불빛의 흐느낌이 보였을 것이다 그 불
빛의 흐느낌을 뜯겨버린 생으로 혼자 앉아 있는 술
집에서 나도 언뜻 본 적이 있다는 거다

 

 

                                             

                                                  시집' 멍게' 2014.3. 24 <문학과 지성사>

 

 

*       *        *

 

 

집어등을 보고 달려드는 오징어나 불빛을 보고 달라드는 하루살이들이나

' 환장한 슬픔' 이고  환장할 슬픔이다

 

잠 결에 소변을 보러 나왔든지, 술이 한 잔되어 실족 했든지

' 선원 하나가 스르륵 바다로 빨려들어' 실종이 되어도 바다와 배 사이

에는 적막이 오갈 뿐...실제 시신도 찾지 못하는 경우를 통영서 여럿 봤다.

 

시인은 ' 집어등 불빛의 흐느낌을 뜯겨버린 생으로 혼자 앉아 있는 술집에서

언뜻 본 적이 있다'고 하고...

 

마음이 내켜 한번 씩 감상하는 바다는 온순하고 평화롭기까지 했지만

생계인 사람, 생존의 터전인 사람에게 바다는 결코 만만치 않은 곳임에랴...

 

멕시코 갈 때,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하늘과 바다와 땅이 다 깜깜한 중에 태평양 한 바다 어딘가...조그맣게 보이던 불빛

오징어 집어등이었던 듯... 오래 눈에 담겨 있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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