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자
꽃은 자전거를 타고
그녀가 죽던 날
꽃은 자전거를 타고 왔다
그녀의 남자가 입원실 현관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막 아네모네 꽃을 내리려고 할 때
그녀의 심장은 뚝 멎었다
꽃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영안실 근처로 갔다
죽을 자리에서도 타오른다는 아네모네가
놀란 자전거를 타고 앉아
헛바퀴만 돌리고 또 돌렸다
그날,
꽃은 온종일 자전거에게 끌려 다녔다
꽃을 태운 자전거는 참았던 속력을 냈다
꽃도 그녀처럼 자전거를 타고 앉아
남자의 등을 탁탁 때리며 달렸다
꽃은 내부가 무너지도록 달렸다
마지막 꽃 한송이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뭐라고 말했지만
바람이 그 말을 쓸어갔다
그날,
빈 자전거 한 대
고수부지 잡석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시와 시학》 2007년 봄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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