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아궁이 속으로 들어간 개 박장호

생게사부르 2018. 9. 4. 19:41

 

 

 

 

아궁이 속으로 들어간 개/ 박장호


내 시 속엔 시인이 없지만
자살한 시인이 행간을 걷는다고 나는 써보는 것이다.
인간은 상상을 하는 동물이어서
그가 죽기 전의 시인인지 죽은 후의 시인인지
매몰찬 독자는 내게 물을 것이다.
인간은 말을 꾸미는 동물이기도 해서
걷는 시인의 죽음도 죽은 시인의 걸음도 상상할 수 있다.
마음의 문법엔 시제 일치가 없고
내겐 독자가 없으므로 대답할 의무 없다.
어제는 마른하늘에 비가 온다.
내일은 젖은 하늘에 노을이 물든다.
오늘 낯선 사람은 어제 만난 사람,
오늘 반가운 사람은 내일 만날 사람.
파티션에 가로막힌 머리카락이 자란다.
붉게 물든 까만 머리카락이 자란다.
회상의 시인이자 부활의 시인이
그래, 내 시의 행간을 걷는 것이다.
그가 걷는 거리엔
두뇌를 스치는 단어의 속도로 시간이 흐르고
경제적 무장을 해제한 시인들이
말로 세운 안개의 건물 속으로 들어가
시대의 아픔과 개인적 정서의 소용과
미적 진보의 향방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집에선 자식 없는 아내가
텅 빈 배 속에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맞으며
유령 같은 남편을 기다릴 것이다.
안녕, 아버지를 배정받지 못한 정자들아.
안녕, 악천후 속의 난자들아.
너희들이 다시 보는 나의 과거라면
나는 어떤 시대가 받아주는 저주의 자식일까.
개가 된 논의가 오들오들 떨며
깨진 달걀 같은 폐가의 아궁이 속으로 들어간다.
째깍째깍 장작 타는 소리 불 꺼지는 장작에 달라붙고
반짝이지 않는 생각의 별이 아궁이 속으로 쏟아진다.
흩어지는 안개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는 시인의 손
살자, 오늘 만난 어제의 아내야.
살자, 내일 죽을 남편의 아내야.
개 한 마리 구워 먹고 쓸모없는 논의였다 하면
매몰찬 독자는 내게 물을 것이다.
개 같은 건 논의가 아니라
붉게 자라는 검은 머리털의 시인이 아니냐고.
비유의 경계는 편견뿐이고
마음의 마침표는 물음표뿐이어서
파티션에 가로막힌 개가 짖는다.
까만 털이 붉게 물든 개가 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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