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백석 통영

생게사부르 2018. 8. 26. 10:07

백석


통영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내)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장)은 갓갓기도(같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라기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쌔껏 바다에선 뿅뿅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수)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 한다는 곳

산山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든 이 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든데

명정明井골은 산山을 넘어 동백冬柏나무 푸르른 감로甘露 같은 물이

솟는 명정明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깃는 처녀며 새악식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冬柏꽃 피는 철엔 타관으로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女人은 평안

도平安道서 오신 듯한데 동백冬柏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넷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나는 이 저녁을 울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여가며

녕(영)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

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 1936. 1. 23일자 ' 조선일보' 실림

 

 

 *        *         * 

 

 

비가 주룩주룩 내리다가 그쳤다가 반복하면서 하루가 지나 갈 것 같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한차례 마무리 되었네요.

이념도 뭣도 아무것도 아니지요.

90- 100세 본인은 물론이고 그 자녀들이 이미 70대 돌아 가실 즈음에 이른 연령들...

 

' 천륜' 혈육의 정을 가로막았을 분단 세월, 역시 피가 물보다 진함을 확인하시면서

평생의 恨이 어느 정도나마 풀리셨기를 바랍니다

 

 

평안북도 출신 백석시인이 남해 쪽 ' 통영'을 세번 정도 다녀 가신 것 같습니다

위 시는 두번째 방문 후 발표했던 작품이고요.

 

신문사에 근무하던 시절 마산, 통영, 삼천포 등 남해안 지역으로으로 취재여행을 간다는

핑계를 대고 마음 먹고 일주일간 출장을 온 모양(안도현 백석 평전)입니다

물론 숨은 동기로는 그 전해 1935년 6월 친구 허준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만난 ' 란(박경련)'이라는 여성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화고보 학생이었던 통영 출신 ' 란'이 25세의 청년 백석의 마음을 온통 사로 잡았던 시기라고 알려지거든요.

다른 포스팅에서 당시로서는 modern boy 였던  백석의 여자 얘기 여러차례 나와서 오늘은 곁가지 얘기

 

1960년대 부산에서 지리산 가는 얘기를 어디서 읽었는데 요즘 내가 마츄피츄 간 거 보다 더 힘들게

느껴 진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 시절 평북은 말 할 필요도 없겠고 ' 경성' 에서 조차 통영 오는 길이 예사롭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경부선 열차를 타고 오다가 부산 못 미쳐 밀양 삼랑진 역에서 내려 마산 오는 기차를 갈아 타야 합니다.

낙동강- 유림정- 진영- 덕산-창원- 구 창원- 역을 거쳐 마산 역에 닿으면 또 통영까지 가는 것이지요

구 마산 선창에서 배를 이용하여 반 나절 더 간 모양입니다.

 

' 통영'에 첫 발령을 받아 갔을 때가 1981년인데 

그 당시 학생들의 희망사항 중에 ' 기차'를 타 보는 것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다가 없는 내륙지방 아이들이 ' 바다' 를 보고 싶다든가 배를 타보고 싶은 것 처럼요

그렇게 배를 흔하게 타던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수학 여행을 가면서 통영- 고성- 진동을 거쳐 마산에 나오는

1시간 반 동안 멀미란 멀미는 다 해서 인솔교사로서 참으로 난감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그 시간이 반으로 줄었고 길도 잘 닦여 있어서 마산서 통영 가는 일은 일도 아니고

아이들이 어릴 적 부터 부모님 따라 승용차 타고 다니는 일이 일상화 되기도 했고요

 

어떻든  ' 나는 북관에 혼자 앓아 ' 눕거나(고향)'

' 남 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이라는 시를 남긴 평북 정주 출신 시인

흰 눈이  푹푹 내리고 쌓이는 곳의 상징인 백석 시인이

내가 살고 있는 창원, 마산을 왔다 가고 통영, 삼천포를 다녀간 이후 쓴 ' 남행 시초' 가 친근하게 다가 옵니다.

 

특히 내가 십년 가까이 생활 했고, 지금까지 자주 드나들어서 잘아는 통영

겨울에도 붉은 동백꽃과 열매를 볼 수 있는 갓의 고장

충렬사 계단에 앉아 명정샘을 바라보며 마음을 사로잡은 여성을 그리워하는 시인을

생각해 보는 하루입니다.

 

아무리 대 시인이라도 마음에 품은 그리움 없이 자연풍광만으로는 시 쓰기가 어려운지

' 향수' 의 시인 정지용이 다음과 같이 얘기 했으니, 백석 시인이 이긴(?)건가요

통영 미륵산에 새겨져 있는 내용입니다만... 

 

 

 

 

 

 

미륵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다도해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