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세 편
산山 비/ 백석
산山 뽕닢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둘기가 난다
나무등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 켠을 본다
귀가/ 이시영
누군가의 구둣발이 지렁이 한 마리를 밟고 지나갔다
그 발은 뚜벅뚜벅 걸어가
그들만의 단란한 식탁에서 환히 웃고 있으리라
지렁이 한 마리가 포도에서 으깨어진 머리를 들어
간신히 집쪽을 바라보는 동안
따뜻한 외면 / 복효근
비를 그으려 나뭇가지에 날아든 새가
나뭇잎 뒤에 매달려 비를 긋는 나비를 작은 나뭇잎으로만 여기고
나비 쪽을 외면하는
늦은 오후
* * *
소품 같은 짧은 시도 얼마든지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됩니다.
갑자기 들이치는 비에 반응하는 멧비둘기와 자벌레를 스냅사진 찍듯 순간적으로 포착하면서
자연풍경을 간결하게 표현해 낸 속에 먹이 사슬에 의해 살고 죽는 생태계의 엄연한 현실
비로 인해 둥지를 찾아 날아가는 멧비둘기를 보면서 자벌레는 안도의 숨을 내 쉬겠지요
' 귀가' 에서 지렁이는 이미 밟혀 버렸네요.
중, 고 시절 운동장에 빗물 그득하고 지렁이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이쪽 저쪽 깔리면
그 지렁이 밟지 않으려고 깨금발 하던 일 생각납니다
복효근 시에서도 그런 부분이 있네요
나비의 위장술이 완벽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서로 급하게 비를 피하는 입장에서 모르는 척 해 준 것일까요
모든 시인들은 시 공부를 하는 동안 앞선 선배 시인들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습니다.
특히 자기 마음에 드는 시를 쓰는 시인의 작품이라면 더 그렇겠지요
'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 쯤 되면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영향이 됩니다.
2005년 계간' 시인세계' 설문조사에서 현역시인 156명이 뽑은
' 우리시대 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 백석 시인의 ' 사슴'이라니
백석 시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은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지요.
백석 시인보다 다섯살 아래인 윤동주 시인이
1936년 1월 20일 100부 한정판으로 나온 시집 ' 사슴'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
1937년 8월이 되어서야 도서관에서 겨우 빌려 읽을수 있었다는 얘기
'시집을 빌리자 말자 그는 그 자리에서 필사를 하기 시작하였고 한 글자 한 글자 최대한 정성을 들여
시집 속에 실린 시를 공책에 베껴 썼다. 필사본 시집을 읽으며 자신의 소감을 공책 모퉁이에
적어 두기도 하면서 ' 사슴'을 옆에 끼고 살다시피 하였다'고
이동순 시인은 ' 문학사의 영향론을 통해 본 백석의 시' 에서
청록파 시인들과 윤동주, 해방이후 신경림, 박용래, 이시영, 김명인, 송수권. 최두석, 박태일,
안도현, 심호택, 허의행' 의 시가 백석의 시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했습니다.
유성호 평론가는 ' 백석시의 영향' 2011. 이렇게 분석하기도 했고요
백석 시는 후대 시인들에게 어떤 영향과 흔적을 남겼는가
하나는 근대 혹은 '근대적인 것'에 대한 반성적 전거와 ' 시각' 보다는 ' 후각/ 미각'으로 경사된
사물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 가난' 의 시적 기표를 통해 소외된 이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보인 현실
이해방식이며
마지막 하나는 운명, 또는 생의 형식에 대한 중후한 성찰 태도와 그 특유의 산문시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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