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이원 모두 고양이로소이다

생게사부르 2018. 8. 11. 08:58

이원


모두 고양이로소이다

 

목소리를 꺼내자
가르릉거리자
몸보다 몇 배 커진
그림자를 차도로 던지고
앞 발을 들어 얼굴을 한번 훑어내리자
깨끗해지는 거다
세수를 하는 시늉을 하자
인도에 어울리는 인물이 되자
깨진 보도블럭 위에 울음을 똑똑 놓아두자
다시 돌아올 것처럼
귀를 쫑긋 세우자
눈알은 빨개지자
열렬하게 몰두하는 척하자
한 밤을 기다려
차도를 가로지르자
우아하게 걸어
텅빈 궁의 지하주차장에서 만나자
검정 치마 속이라 여기자
밤은 어디나 정면이다
기는 흉내를 내자
앞발을 모으고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잘 못을 아는 고양이가 되자
기울어진 궁의 지붕에 앉아
목을 빼자
몸은 웅크리자
검어지다가
어두워지다가
잠기다가
검정에 겹쳐지다가
정면을 할퀴며
튀어 오르자
허공의 목젖으로 멈추자
던져질 준비를 하자
단단한 소리가 되자
우리는 고양이다
먼 곳 까지 검정을 놓아 둔 검정이 되자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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