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은령 능소화는 또 피어서

생게사부르 2018. 8. 9. 01:18

능소화는 또 피어서/ 김은령



저것 봐라

화냥화냥 색을 흘리며

슬쩍 담 타넘는 품새라니

눌러 죽인 전생의 내 본색이

살아서 예까지 또 왔다

능소凌宵

능소凌宵,

아무리 우겨보아도

결국

담장 아래로 헛헛이 지고 말

운명이면서

다시 염천을 겁탈하는 꽃

눈멀어 낭자히 통곡하는

누대의 습생


- 시집『잠시 위탁했다』 (문예미학사, 2018)


김선우는 <능소화>에서

“이글거리는 밀랍 같은, 끓는 용암 같은, 염천을 능멸하며 붉은 웃음 퍼올려 몸 풀고 꽃술 달고

 쟁쟁한 열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능소야 능소야”라면서 붉디붉은 징을 떠올린다.

 

정끝별은 <여름 능소화>에서

“오뉴월 불 든 사랑을 저리 천연스레 완성하고 있다니!”라고 경탄했다.

 

문성해의 <능소화>는

“우툴두툴한 늑골이 어느새 고사목이 되어도 해마다 여름이면 발갛게 볼우물을 패는 꽃이 있다”며

늙은 측백나무와의 설화를 전한다.

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의 온도가 능소화 붉은 꽃잎에 그대로 전도되었는지 빛깔은 가히 뇌쇄적이다.

색정과 욕망의 요염한 정서가 듬뿍 깃들어 있다.

능소(凌霄)는 '하늘을 능멸하는' 이란 뜻이다.

하늘에 닿을 듯 뻗어간다고 해서 ‘하늘을 이기는 꽃’이란 별칭을 얻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화사함과 고고함을 뽐내는지라 '밤을 능가하는 꽃'으로도 불린다.

이 꽃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또 얼마나 높이 자라났으면 하늘을 눈 아래로 본다고 하였을까.

그래봤자 동백처럼 통꽃의 구조라 한 잎 한 잎이 아니라 송이 째 뚝뚝 떨어져

‘결국 담장 아래로 헛헛이 지고 말 운명’인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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