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허수경 수박

생게사부르 2018. 7. 14. 07:45

수박

 

허수경


아직도 둥근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둥근 적이 없었던 청춘이 문득
돌아오다 길 잃은 것처럼

그러나 아휴 둥글기도 해라
저 푸른 지구만한 땅의 열매

저물어가는 저녁이었어요
수박 한 통 사들고 돌아오는
그대도 내 눈동자,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었지요

태양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당신은 영원한 사랑
태양의 산만한 친구 구름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당신은 나의 울적한 사랑
태양의 우울한 그림자 비에게 말을 걸었어요
당신은 나의 혼자 떠난 피리 같은 사랑

땅을 안았지요
둥근 바람의 어깨가 가만히 왔지요
나, 수박 속에 든
저 수많은 별들을 모르던 시절
나는 당신의 그림자만이 좋았어요

저 푸른 시절의 손바닥이 저렇게
붉어서
검은 눈물 같은 사랑을 안고 있는 줄
알게되어
이제는 당신의 저만치 가 있는 마음도
좋아요

내가 어떻게 보았을까요 기적처럼
이제 곧

푸르게 차 오르는 냇물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재와 붕장어의 시간이 온다는 걸
선잠과 어린 새벽의 손이 포퓰러처럼
흔들리는 시간이 온다는 걸
날아가는 어린새가 수박빛 향기를
몰고 가는 시간이 온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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