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돌에 물을 준다 이선자

생게사부르 2018. 7. 12. 06:49

돌에 물을 준다/ 이선자

 

 

 

돌에 물을 준다
멈춘 것도 같고 늙어가는 것도 같은
이 조용한 목마름에 물을 준다
이끼 품은 흙 한덩이 옆으로 옮겨 온
너를 볼 때마다
너를 발견했던 물새우 투명한 그 강가의
밤 이슬을 생각하며 내가 먼저 목말라
너에게 물을 준다

나를 건드리고 지나가는 것들을 향해 손을 내 밀수도 없었고
뒤돌아 볼수도 없었다. 나는 무거웠고 바람은 또 쉽게 지나갔다
움직일 수 없는 내게 바람은 어둠과 빛을 끌어 주었다
때로 등을 태워 검어지기도 했고 목이 말라 창백해지기도 했다
아무하고도 말을 할 수 없을 때, 긴 꼬챙이 같은 가슴을 뚫고 오는
빗줄기를 먹고 살았다 아픔은,
더더구나 외로움 같은 건 나를 지나는
사람들 이야기로만 쓰여졌다 나는 몸을 문질렀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숨소리도 없이 몸을 문질렀다
내 몸에 무늬가 생겼다
으깨진 시간의 무늬 사이로 숨이 나왔다

강가 밤이슬 사라지고
소리 없이 웅크린 기억들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너의 긴 길이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멈출 수도, 늙어 갈 줄도 모르는
돌 속의 길이
나에게 물을 준다


 

2005.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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