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나의 아름다운 방/신영배

생게사부르 2018. 7. 17. 16:37

나의 아름다운 방/ 신영배



오후 두 시 방향으로
나는 상자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얇게 접어 둔 다리

의자는 새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앉아 있던 잠이 툭 떨어져 내린다
의자가 쓰러지고
새가 아름답게 나는 방

오후 네 시 방향으로
나는 물병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흠뻑 젖은 주둥이로 다리를 조금 흘린다
관 뚜껑을 적시는 문장

화분은 고양이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깨진 고양이가 내 손등을 할퀸다
씨앗이 퍼진다
갈라진 손등에 고양이를 묻고

해 질 녘 손의 음송

오후 여섯시 방향으로
나는 기다란 악기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붉은 손가락으로 관 속의 다리를 연주한다

커튼은 물고기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젖히자 출렁이는 강물 속
내 다리가 아름답게 흐르는 방



- 오후 여섯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중에서

 

 

 

 

 

키가 작은 내가 길어진다. 그림자, 빛의 힘을 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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