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신영배 물모자를 쓰고

생게사부르 2018. 7. 16. 07:38

물모자를 쓰고/신영배


 

나는 물모자를 쓰고 거짓말을 했다
나의 바구니에는 사과가 가득
사과는 속이 썩어 있었다
맛있는 사과
사과 사세요 사과 사세요
나는 물모자를 쓰고
사과는 시간
하루 벌어 하루
실패하는 때가 많다
유모차를 끄는 엄마에게 빨간색
핸드백을 멘 아가씨에게 빨간색
사과는 빛
등 뒤에서 나무가 물모자를 흔들었다
아침에 지나간 여자가 저녁에 찾아왔다
사과를 반으로 쪼개 보이며
썩 썩 썩 썩었잖아요
나는 물모자를 쓰고 소녀
얼굴이 빨개지고
다시 맛있는 사과
사과 사세요 사과 사세요
썩은 사과를 쪼갠 바람이 밤과 함께 찾아왔다
어 어 어 어쩌라고요
나는 바구니를 엎고 소리를 질렀다
사과가 흩어지고
사과는 시간
검은 물방울이 벌어지기도 하는
나는 물모자를 쓰고 할머니
초승달이 떴다
사과는 빛
물모자가 나뭇가지에 걸렸다
나무는 초승달 속에 사과를 주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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