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비 그친 뒤 이정록

생게사부르 2018. 7. 8. 21:36

비 그친 뒤/ 이정록


 

  안마당을 두드리고 소나기 지나가자 놀란 지렁이 몇 마리 서둘러 기어간다 방금
알을 낳은 암탉이 성큼성큼 뛰어와 지렁이를 삼키고선 연필 다듬듯 부리를 문지른


  천둥번개에 비틀거리던 하늘이 그 부리 끝을 중심으로 수평을 잡는다 개구리 한
마리 안마당에 패대기친 수탉이 활개치며 울어 제끼자 울 밑 봉숭아며 물앵두 이파
리가 빗방울을 내려 놓는다 병아리들이 엄마 아빠 섞어 부르며 키질 위 메주콩처럼
몰려다닌다

  모낸 무논의 물살이 파르라니 떨린다 온 몸에 초록 침을 맞은 하늘이 파랗게 질려
있다 침 놓은 자리로 엄살엄살 구름 몇이 다가간다 개구리 똥꼬가 알 낳느라고 참
간지러웠겠다 암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논 쪽을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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