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귀 거래사 / 천수호
아버지는 귀를 먼저 지우셨다
기억과 거래하는 족족 귀는 몸에서 떨어져 나와
기웃기웃 날아서 반 백 년을 도로 넘어갔다, 가버렸다
사라진 귀들,
고흐의 귀가 그랬고 윤두서의 귀가 그랬다
귀만 먼저 날아서 먼 세기로 넘어 가버렸다
귓바퀴만 남아서 헛바퀴를 돌릴 동안
귀가 없어진 아버지의 눈은 까무룩해졌다
아버지는 중년의 딸도 잊고
두런두런 탄식이 풍덩, 수련으로 피어오르는 연못만 바라본다
수련과 연꽃이 구분도 없이 흐드러진
아버지의 동공을 흔들어 보지만
좀처럼 오십 년은 돌아오지 않고
아버지는 지루한 하품을 한다
덩달아 후두를 활짝 여는 수련잎
연못의 푸른 동공이 휘둥그레진다
연못은 아무래도 저 눈을 먼저 지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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