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근/ 이사
1
내가 떠난 뒤에도 그 집엔 저녁이면 형광등 불빛이 켜지고
사내는 묵은 시집을 읽거나 저녁거리를 치운 책상에서
더듬더듬 원고를 쓸 것이다 몇 잔의 커피와,
담배와, 새벽녘의 그 몹쓸 파지들 위로 떨어지는 마른 기침소리
누가 왔다갔는지 때로 한 편의 시를 쓸 때마다
그 환한 자리에 더운 숨결이 일고,
계절이 골목집 건너 백목련의 꽃망울과 은행나무 가지 위에서 바뀔 무렵이면
그 집엔 밀린 빨래들이 그 작은 마당과
녹슨 창틀과 흐린 처마와 담벽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햇살에 취해 바람에 흔들거릴 것이다
눈을 들면 사내의 가난한 이마에 하늘의 푸른빛들이 뚝 뚝 떨어지고
아무도 모르지, 그런 날 저녁에 부엌에서 들려오는
정갈한 도마질 소리와 고등어 굽는 냄새
바람이 먼 데서 불러온 아잇적 서툰 노래
내가 떠난 뒤에도 그 낡은 집엔 마당귀를 돌아가며
어린 고추가 자라고 방울토마토가 열리고
원추리는 그 주홍빛 꽃을 터트릴 것이다
그리고 낮도 밤도 없이 빗줄기에 하늘이 온통 잠기는 장마가
또 오고, 사내는 그때에도
혼자 방문턱에 앉아 술잔을 뒤집으며
빗물에 떠내려가는 원추리꽃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부러져나간
고춧대와 허리가 꺾여버린 토마토 줄기들과 전기가 끊긴
한밤중의 빗소리…… 그렇게
가을이 수척해진 얼굴로 대문간을 기웃거릴 때
별일도 다 있지, 그는 마당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누군가 부쳐온 시집을 읽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물결을 끌어당기고 내밀면서
내뱉고 부르면서
강물은 숨쉬는가
2
그 낡은 집을 나와 나는 밤거리를 걷는다
저기 봐라, 흘러넘치는 광고 불빛과
여자들과
경쾌한 노래
막 옷을 갈아입은 성장(盛裝)한 마네킹들
이 도시는 시간도 기억도 없다
생(生)이 잡문이 될 때까지 나는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때로 그 길을 걸어 그가 올지도 모른다 밤새 얼어붙은 수도꼭지를
팔팔 끓는 물로 녹이고 혼자서 웃음을 터트리는,
그런 모습으로 찾아와 짠지에 라면을 끓이고
소주잔을 흔들면서 몇편의 시를 읽을지도 모른다
도시의 가난한 겨울밤은 눈벌판도 없는데
그 사내는 홀로 눈을 맞으며
천천히 벌판을 질러갈 것이다
* * *
박영근 시인 추모 12주년 행사가 인천에서 치러지네요
제4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자로 김수상 시인의 '미움은 미워하며 자라고 사랑은 사랑하며 자란다'
가 선정됐다는 소식과 함께...
시는 역시 ' 사람'이 쓰는 것이며 ' 그 사람' 만이 쓸 수 있는 그 사람의 生이란 생각,
48세로 돌아가신 최초의 '노동자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자랑스러울지 아니면 서글플지
그 둘다 일 수도 있겠네요.
내가 이 시인에 대해서 알게 된 건 ' 안치환' 의'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의 노래를 통해서였습니다
1980년대 투쟁현장에서 꼭 불리는 노래였는데 그 가사의 원작자로 알게 된 셈입니다.
김두안 시인과 잠시 오버랩되기도 했고요
출생지(전북 부안, 전남 신안)에서인지, '노동자 시인'에서인지 '술' 에서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가다가 가다가/ 울다가 일어서다가/
만나는 작은 빛들을/ 詩라고 부르고 싶다.
(중략)
때때로 스스로의 맨살을 물어뜯는
외로움 속에서 그러나/
아주 겸손하게 작은 목소리로/
부끄럽게 부르는 이름을/ 詩라고 부르고 싶다.
(1984년 첫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에 수록된 <서시>)"
위에서 얘기한 서글픔은 시인이 꿈꾸는 이상은 멀어도 한참 멀고 현실은 냉혹하니까요
아래 일화가 특히 그러합니다
<1990년대 말 논술학원 교사 채용시험을 봤다. 그러나 4권의 시집을 냈고, '신동엽창작기금'까지 탄 그에게
학원에서는 '대학 졸업장을 가져오라' 고 주문을 했다 >
위 일화를 듣고 신현수 시인은 '박영근'이라는 시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시험보고 와서/ 술을 먹는데/ 영근이는 눈물 글썽이며
자존심 때문에 졸업장 없다는 말은 못하고
문학단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안되겠다고 했단다.
세상이여 제발/ 내 친구 영근이에게/ 예의를 지켜라."
학교가 아니고 학원입니다만 현실사회의 규칙, 룰이랄까요
잘 가르칠 역량이 되고 안 되고의 ' 사람' 이전에 외적으로 서류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요
교육청의 지도를 받는 학원으로서는 자격증을 가진 강사를 채용해야하니 철학과든 국문학과든
가르칠 전공관련 학과에서 공부하고 졸업했다는 자격증이 있어야 했을 겁니다.
물론 그 이후, 실기역량이 뛰어난 사람도 자격을 주는 것으로 일부 고쳐지긴 했지만 우선 서류상 확인되는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라는 점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겁니다.
한번 씩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학력위조'나 ' 학력세탁' 문제들이 그래서 나온것이겠고요
그러고 보면 시는 그 사람의 학력과 상관없이 열려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
물론 시인들 중에도 석 박사까지 공부를 해서 교수인 사람, 교사,
언론이나 출판, 홍보회사 등 회사원, 기술자, 노동자, 의사 , 주부 등 다양한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에 있게 되는데... 어떤 사람이든지, 어떤 직업의 사람이든지 시를 쓸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긴 합니다.
시의 폭과 깊이에서 그 완성도나 작품성이 어느 수준까지 성취했느냐는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지요
어떻든 '김광규' 시 <묘비명> 마지막 구절이 생각 납니다
'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남은 사람들이 돌아가신 시인을 기리며 유고시집을 내고 추모비를 세우며 시인 이름이 들어간
문학상을 제정해서 그 시인의 정신을 이어나가고 후진을 격려한다는 것...그러네요...
뒤에 남은 사람들의 부채감이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든 그렇게 기념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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