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이영광
모내기철 기다리는 남양주 들판
해질녘, 논은 찬데
황새는 물 위에 떠 있다
보이지도 않는 긴 다리를
철심처럼 진흙에 박아놓고
가까이서 보면 그는 외발,
가늘고 위태로운 선 하나로
드넓은 수면의
평형을 잡고 있다
물 아래 꿈틀대는 진흙 세상의
혈을 짚고 서 있다
황새는 꿈 꾸듯 생각하는 새,
다시 어두워 오는 누리에 불현듯 남은
그의 외발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한 발 마저 디딜 곳을 끝내
찾지 못했다는 것일까
진흙 세상에 두 발을 다 담글 수는
없다는 것일까
저 새는 날개에 스며 있을 아득한 처음을,
날개를 움찔거리게 하는 마지막의 부름을
외발로 궁리하는 새,
사라지려는 듯 태어나려는 듯
일생을 한 점에 모아
뿌옇게 딛고 서 있었는데
사람 그림자 지나가고,
시린 물이 제자리에서 하염없이 밀리는 동안
새는 문득, 평생의 경계에서
사라지고 없다
백만 평의 어둠이 그의 텅빈 자리에
밤새도록 새까맣게 들어앉아야 한다
1965. 경북의성
1998.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빙폭'등단
시집: <직선위에서 떨다> 창작과 비평. 2003
<그늘과 사귀다> 랜덤하우스 코리아. 2007 (재판) 문예중앙. 2011
<아픈 천국> 창비. 2011
<나무는 간다> 창비. 2013
연구서 <시름과 경이> 천년의 시작.2012
편저 <홀림 떨림 울림> 나남 출판. 2013
* * *
사진을 찾아 보니 황새든 학이든 외발로 서 있는 모습은 의외로 찾기 어렵네요.
두 발로 걷는 모습, 날개를 펴고 멋지게 비행하는 모습, 무리를 짓고 있는 모습,
먹이를 잡는 모습,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모습 등등
일부러 기다리지 않는다면 우연히 외발로 서 있는 모습 포착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혹 보게되더라도 순간포착 타이밍을 놓치지 않아야 할 테니...
결국 괜찮은 사진 건지려면... 새들이 날아오는 시기, 그 장소를 미리 알고
사진 찍을 만반의 준비를 해서 여러 장을 찍은 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게되는 것
시 쓰는 일이나 사진을 찍는 일이나 범사가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는 것
학, 황새, 백로, 왜가리, 해오라기...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이름에
종종 외발로 서 있는 모습이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하는지 넌센스 퀴즈에도 등장합니다.
' 발이 시려서' ' 두발 다 들면 빠지니까' 등등
체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런다고 하네요. 어떻든 시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가늘고 위태로운 선 하나로
드넓은 수면의
평형을 잡고 있다
물 아래 꿈틀대는 진흙 세상의
혈을 짚고 서 있다
사진 출처 : 들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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