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
미수未遂
글씨를 모르는 대낮이 마당까지 기어나온 칡덩굴과 칡순들과 한
그루 木百日紅의 붉은 꽃잎들과 그들의 혀들과 맨살로 몸 부비고
있다가 글씨를 아는 내가 모자까지 쓰고 거기에 이르자 화들짝
놀라 한줄금 소나기로 몸을 가리고 여름 숲 속으로 숨어 들었다
매우 빨랐으나 뺑소니라는 말은 가당치 않았다 상스러웠다 그런
말엔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없었다
들킨 건 나였다 이르지 못했다 미수未遂에 그쳤다
1939.10. 경기 안성시 ~ 2017.9. (향년 77세)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나팔서정'
이상시문학상 외 4건
1988 현대시학 주간 역임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장욱 표백 (0) | 2018.03.12 |
---|---|
이승훈 사물 A (0) | 2018.03.11 |
송재학 적막, 그림자 속에서 만져 지는 뼈 (0) | 2018.03.08 |
변선우 복도 (0) | 2018.03.05 |
천수호 이젠 지겹다고 안 할게 (0) | 2018.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