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정진규 미수未遂

생게사부르 2018. 3. 9. 13:20

정진규


미수未遂


 

글씨를 모르는 대낮이 마당까지 기어나온 칡덩굴과 칡순들과 한

그루 木百日紅의 붉은 꽃잎들과 그들의 혀들과 맨살로 몸 부비고

있다가 글씨를 아는 내가 모자까지 쓰고 거기에 이르자 화들짝

놀라 한줄금 소나기로 몸을 가리고 여름 숲 속으로 숨어 들었다

매우 빨랐으나 뺑소니라는 말은 가당치 않았다 상스러웠다 그런

말엔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없었다

들킨 건 나였다 이르지 못했다 미수未遂에 그쳤다

 

 

 

   

 

     1939.10. 경기 안성시 ~ 2017.9. (향년 77세)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나팔서정'

     이상시문학상  외 4건

     1988 현대시학 주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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