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호
이젠 지겹다고 안 할게
1.
당신이 사랑이라는 말을 처음 시작할 때
발에 걸리는 줄넘기 같은 저 산은
파도를 밑변으로 받치고 있었다
당신이 손을 뻗어 저 산 뒤쪽을 얘길할 때 나는
무명 끈 잡아 당기며 몸 속 파도에 퍼붓던 애초의 욕설과
나지막한 봉분의 속삭임을 뒤 섞고 있었다
당신은 그렇게 왔고 또 그렇게 떠났다
왔다고 하고 떠났다고 했지만
그 곳이란 원래 없는 것
파도에 풀어내는 바다
당신이 다시 온다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해도 이젠 지겹다고 안 할게
그 말이 그말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다 다르다고 생각할게
갈매기가 한 쪽 발을 적실 때와
통통배가 빠르게 지나갈 때의 파도가 다르듯이
2.
떠난지가 5개월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는 당신 조의금을 보내온다
당신이 저 바닷물에 소금이 녹는데 5개월이 걸린다고 했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어떻게 그렇게 천천히 걸을 수 있는지
바닷물이 소금이 되는데 한나절이면 된다는 내 말에 코웃음치며
당신은 또 저 건너편 산쪽으로 달려간다
다시는 안 돌아올 기세로 가쁘게 숨을 몰아쉰다
파도의 겹겹 또는 첩첩
그 깊은 여울 속으로 당신이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 들어가는 것을,
마지막 호흡과 맥박과 혈압을,
떨어지는 수치로만 지켜보면서
바다가 가팔라 진다
터지는 파도,먹는파도,뒹구는 파도, 놀라는 파도 사이로
굵고도 붉은 당신이 진다
웹진' 시인광장' 2015.8.
* * *
어제 오늘 기사를 곁눈으로 슬쩍 훑기만해도, 아니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웃을 일 보다 서글프고 한심한 일들이 더 많은지
정말 지겹지만
그래서 ' 살아가는게' 아니라 ' 살아 낸다'고 해야하겠지만
그래도 ' 사랑'만이 ' 사람사는 세상을 위한' 희망일 것이기에
시인은 ' 떠난지가 5개월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는 당신 조의금을 보내온다
당신이 저 바닷물에 소금이 녹는데 5개월이 걸린다고 했던 말을 ...
사람이 신념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일찍 고정되고 굳어져 버리면
표현이 좀 뭣하지만 ' 뇌를 쪼개서 바닷물에 씻어서 다시 붙일 수 있다' 해도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기에 죽는 순간까지 생각이 유연하게 열려 있어야하고 조금씩 나아져야 하는데... 그 선택은 본인 몫입니다.
'단식'이라하면 목숨을 건 행위일 것이기에 당사자로선 심각한 일인데....지겹네요. 정말 지겹네요
지겨운게 너무 오랫 동안 곰삭아서 이제 역겨워지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공적인 공간'에서 이런 사람들 사진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조원진, 14일 만에 단식 중단 선언..병원 입원 2017.10.23 JTBC
정말 지겹다가도... '지겹다고 안할 게'라고 할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사진입니다.
엘시티 추락사고 현장…오열하는 유가족/ 사진=연합뉴스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재학 적막, 그림자 속에서 만져 지는 뼈 (0) | 2018.03.08 |
---|---|
변선우 복도 (0) | 2018.03.05 |
김경후 속수무책 (0) | 2018.03.02 |
송찬호 나비 (0) | 2018.02.28 |
김영주 시인과 사람 (0) | 2018.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