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송재학 적막, 그림자 속에서 만져 지는 뼈

생게사부르 2018. 3. 8. 12:48

적막/송재학


 

빙하가 있는 산의 밤하늘에서 백 만 개의 눈동자를
헤아렸다 나를 가만히 지켜보는 별과 나를 쏘아 보는
별똥별들을 눈부릅뜨고 바라 보았으나 별의 높이에서
나도 예민한 눈빛의 별이다 별과 별이 부딪치는
찰랑거리는 패물소리는 백만 년 만에 내 귀에 닿았다
별의 발자국 소리가 새겨졌다 그게 적막이라는
두근거림이다 별은 별을 이해하니까 나를 비롯한 모든
별은 서로 식구들이다


 

 


 

 

 

그림자 속에서 만져지는 뼈

 

 

 

밤 늦게 도착한 읍내, 이정표가 도착하지 않았기에 나와 함께 방황하는 소읍

이다. 밤 안개의 혀를 가진 골목이 있다면 침묵에도 안개의 긴 혀가 있다. 고양이

가 할퀴고 간 골목에는 전봇대 그림자 무성하다. 완강한 콘크리트 전봇대, 꿈틀

거리고 짓 물린 물질 깊이 박혀 있다. 전봇대는 짐짓 부드럽게 그림자를 늘려 볼

썽 사나운 나에게도 기댄다. 내 속에 있는 철근의 부패한 냄새를 맡은 것이다. 모

든 전봇대 그림자는 저마다 향일점을 찾아가는데 내 그림자를 흉내내는 전봇대

의 애욕이 서늘하다. 낯설고 간절한 극(劇)을 원한다면 녹슨 철근과 비 슷한 내

뼈만한 것이 있을 가까. 그들은의 접촉은 부식의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내뼈는

오래전부터 복화술을 배웠기에 그림자 속에서 휘파람을 부는 뼈마디 하나 주운 것

도 이상하지 않다

 

 

 

 

송재학: 1955. 경북 영천

           1986. 세계의 문학 ' 어둔 날짜를 스쳐서'

            2017. 동리 목월 문학상 수상

 

 

 *       *       *

 

 

객관적 대상의 외면을 기술하는 유형 중 해체시의 한 예

 

객관적 대상을 주관적, 직관적으로 해체하여 그 파편적 인상들을 감각적으로 그려 보여 주는 유형이다.

묘사시와 해체시의 차이는 시인이 대상을 유기적으로 통합된 존재로 보느냐 그것을 해체된 잔여물로 보느냐 하는데 있다

 

송재학 시인의 '그림자 속에서 만져지는 뼈'는

시인이 본 그 소읍의 풍경은 통합된 주체로 시인 앞에 서 있는 한 개의 사물이 아니라 해체된 사물의 각 부분,

그리하여 무엇이라 호명 할수 없는 소재들의 우연한 관계 혹은 무관계에 대한 보고서이다. 

이 시에서 '전봇대'는 '휘파람 부는 뼈마디', '그림자'는 '애욕'으로 비유되지만

뼈와 애욕, 극劇과 그림자, 복화술 같은 기호들 사이에 어떤 의미의 필연적 연결고리가 없이

대상의 각 부분들이 해체되어 있다.

 

 

-오세영 시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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