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우
복도
나는 기나긴 몸짓이다 흥건하게 엎질러져 있고 그렇담 액체인걸까 어딘가로 흐르고 있고
흐른다는 건 결국인 걸까 힘을 다해 펼쳐져 있다 그렇담 일기인 걸까 저 두 발은 두 눈을
써내려가는 걸까 드러 낼 자신이 없고 드러 낼 문장이 없다 나는 손이 있었다면 총을 쏘아보
았을 것이다 꽝! 하는 소리와 살아 나는 사람들, 나는 기뻐할 수 있을까 그렇담 사람인 걸까
질투는 씹어 삼키는 걸까 살아 있는 건 나밖에 없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걸까 고래가 나
를 건너간다 고래의 두 발은 내 아래서 자유롭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래의 이야기는
시작도 안했으며 채식을 시작한 고래가 있다 저 끝에 과수원이 있다 고래는 풀밭에 매달려
나를 읽어내린다 나의 미래는 거기 적혀 있을까 나의 몸이 다시 시작되고 잘려지고 이어지
는데 과일들은 입을 지우지 않는다 고래의 고향이 싱싱해지는 신호일 걸까 멀어지는 장면에
서 검정이 튀어오른다 내가 저걸 건너간다면... 복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길을 사이에 두고
무수한 과일이 열리고 있다 그 안에 무수한 손잡이
2018.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심사: 김혜순, 조강석
1993. 대전, 한남대 문창과
흥미로운 시적 사유 전개
' 무수한 과일이 열리고 있다 그 안에 무수한 손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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