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근대시간 여행
12월 31일 부안에서 해를 넘기고 서해안 지도를 바꾸었다는 새만금 방조제를 달려 군산으로 넘어갔습니다.
새만금은 날씨가 흐려서 풍광보다는 33.9 KM 면 우리가 자주 다니는 길로 마산서 배둔만큼인지
고성만큼인지 가늠하면서 지나갔습니다
군산하면 먼저 떠오르는 선행 기억은 국사교과서에 실려 있던 한 장의 사진입니다.
일제강점기 호남지방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내 가기 위해 쌓여 있던 쌀 가마니들
군산항을 통해 실어 내 간 쌀들이 얼마일지...
그러나 배고픔을 참고 쌀을 져다 날라야하는 인부들, 미곡 창고에서 일하던 여성들은
퇴근 할때가 되면 온몸을 검색 당합니다. 혹시 속옷 같은데 쌀을 담아 훔쳐(?) 내 가지는 않는지
누가 생산한 쌀이고 누가 먹어야 할 쌀인지...
그렇게 일본으로 실어 나르고 나면 조선일들은 모자라던 식량을 만주에서 가져온 잡곡으로 혹은
깻묵이나 '초근목피' , 뿔 뿌리 나무껍질로 주린 배를 채워야 했지요.
가정에서 혹 조상님들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지붕 이을 때 햅쌀을 숨겨두기라도 했다가 들키는 날이면
또 고초를 당하기가 이루 말로 할수 없었습니다.
일본군이 총 앞에 칼을 끼워 집 구석구석을 다니며 푹푹 찔러 보다가 숨겨둔 쌀이 나오면 잡혀가서 경을 치던 시절
군산의 여행은 역시 근대 시간여행이었습니다.
광무개혁(1907)이후 이루어지기 시작한 상공업 발달에 따라 필요했던
군산세관( 1908 대한제국 자금으로 건립), 조선은행 군산지점, 군산 내항 부잔교(뜬다리)
아니나 다를까 일본의 농민 착취와 농촌 수탈의 흔적들이 즐비했습니다.
1월1일, 신정휴가 였던 탓에 근대 역사 박물관은 굳게 닫겨 있어서 외양 사진과 임병찬 의병장 사진만 담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무역회사로 사용 하다가 또 한때는 은행으로, 해방이후 검역소로 사용하던 건물은
오늘날 추세에 맞춰 '미즈커피' 북카페가 되어 있었습니다.
쌀 곳간을 의미하던 장미동(藏米洞)에 위치한 조선미곡 주식회사의 쌀 창고는
2012년 다목적 공연장으로 개보수 되어 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고요.
우리명절인 구정보다 일본인들은 또 그렇게 신정을 쇠도록 강요 했습니다만 신정인 탓에
근대역사 박물관을 보지 못하고 진포해양공원을 한바퀴 둘렀습니다.
역쉬~ 남자들이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아들을 키우는 분들은 체험학습으로 항공모함에도 올라가 보고
비행기나 탱크같은 전쟁무기를 한번씩 접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 여성입장에서야 아예 무기도 안 만들고 전쟁 같은 게 없는 세상이면 좋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고
특히 남북 통일이나 평화협정 같은 거 체결되기 전, 혹은 모병제로 직업 군인제가 되기 전에는 군대엘 가야하니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남자아이들은 중학생부터 군대 가야한다는 강박감 같은게 생깁니다.
적극적으로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도 있지만 부담으로 느끼는 아이들도 많기에 하는 얘깁니다.
굳이 지역을 나눌 필요는 없지만 전라도 출신 작가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선 생각나는 사람만 해도 조정래, 서정주, 신경숙 김용택.. 군산에는 '레디메이드 인생' '탁류'를 쓴 채만식의
소설 기념비가 있었습니다.
우리 나이쯤 되면 이 다음을 기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다음기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까요. 역사박물관, 철길마을 , 임피역사는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다만 두 가지는 시도는 했는데...포기했습니다.
신정휴일인 오늘 수송반점 짬뽕 먹기가 쉽지 않을 테고
손 아래 시누이랑 조카가 이성당 빵집을 찾아 갔다가 포기하고 왔습니다.
도로에 서 있는 긴 줄 행렬...단팥빵이나 야채빵을 사려면 두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니
갈 길이 먼 사람들로서는 빵 맛 보는 걸 포기하는게 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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