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외국 시

비수아바 심보르스카-두번은 없다

생게사부르 2016. 1. 11. 20:02


비수아바 심보르스카(폴란드 1923~)

 


가장 야릇한 세 낱말(The three oddest words)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발음할 때

첫 음절은 이미 과거에 속해 있다
내가'침묵'이라는 말을 발음할 때
나는 그것을 깨뜨린다
내가' 무'라는 낱말을 발음할 때
나는 비존재가 결코 지닐 수 없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


두번은 없다 (Nothing Twice)



두번 일어 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연습없이 태어나서
실습없이 죽는다

인생의 학교에서는
꼴찌를 하더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같은 공부를 할 수는 없다

어떤 하루도 되풀이 되지 않고
서로 닮은 두 밤도 없다
같은 두번의 입 맞춤도 없고
하나 같은 눈 맞춤도 없다. - -

어제,누군가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불렀을 때,
내겐 열린창으로
던져진 장미처럼 느껴졌지만, - -

 

오늘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난 얼굴을 벽 쪽으로 돌려버렸네

장미? 장미는 어떻게 보이지?

꽃인가? 혹 돌은 아닐까? --

 

악의에 찬 시간, 너는 왜

쓸데없는 불안에 휩싸이니?

그래서 넌 흘러가야만 해

흘러간것은 ....아름다우니까

 

미소하며 포옹하며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방울의

영롱한 물처럼 서로 다르더라도. - -

 

 

(감상: 타인으로 대치 될수 없는 독자적인 개인의 실존을

개체로서 고립된 실존이 아니라 다른 실존과의 관계로 사유범위 확대)

 

 


9월 11일자 사진(부분)  

 

 

그들은 불타는 계단에서 아래를 향해 뛰어 내렸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몇명이서

조금 더 많거나 아니면 적거나

사진은 그들은 어떤 생에서 멈춰 세웠다

대지를 향하고 있는 미지의 상공에서

그들의 현재를 온전히 포착했다

내가 지금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단 두가지 뿐

그들의 수직비행에 대해 구구절절 묘사하거나,

아니면 마지막 문장을 보태지 않고 과감히 끝을 맺는 것

 

 


사진첩(부분)

 

 

가족 중에서 사랑 때문에 죽은이는 아무도 없다

한때 일어난 일을 그저 그뿐, 신화로 남겨질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로미오는 결핵으로 사망했고, 줄리엣은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눈물로 얼룩진 편지에 답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승을 등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에는 코에 안경을 걸치고, 장미 꽃다발을 든

평범한 이웃 남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남편이 갑자기 돌아와

고풍스러운 옷장안에서 질식해 죽는 일도 없다.

 

 

 

빈 아파트 (부분)

 

 

혼자 남은 고양이가 이 텅빈 아파트에서

과연 무엇을 할수 있으리

벽을 타고 기어 오르기

가구들 사이에서 몸을 문지르기

아무것도 변한게 없는 듯 하지만

틀림없이 뭔가가 달라졌다

아무것도 이동한 게 없는 듯하지만

틀림없이 뭔가가 움직였다

뿐만 아니다. 어둠이 찾아와도 이제는 아무도 불을 밝히지 않는다 

 

 


*      *      *

 

 

감상팁 : 섬세한 문체, 재치와 깊이, 초연함은 고전적이고

아이러니와 냉담함에서는 현대적

꾸밈없는 언어, 곁가지 제거된 간결, 절제된 표현, 정곡을 지르는 명징한 언어

풍부한 상징과 은유. 적절한 우화와 패러독스.

대상을 향해 곧장 나가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수법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끝과 시작, 순간

 

일상의 단면에 내재된 그로테스크한 순간 포착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이율배반적인 욕망과 잔인한 본성 비판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향해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체제와 문명의 폭력,

그 속에서 개체가 겪는 소통의 부재와 소외현상

 

복잡한 현대문명사회속에서 익명의 개인으로 버림받고 희생을 강요당하는 생명체의 존재론적 위기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익명의 개인을 호명하여 의미 있는 하나의 실존적 개체로 살아나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