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희
6개월은
6개월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6개월 동안 누군가는
다이어트를 하고 S라인을 만들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미팅을 세 번 하고 두 번 차이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수술을 세 번 하고 병실을 아홉 번 옮기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화를 내다가 매달리다가 지쳐서 잠이 들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마취 주사를 맞고 머릿속 나사를 조였다 풀고
6개월 동안 누군가는
오늘도 죽고 내일도 죽으며 모래시계로 흘러내리고
6개월은 너무 길기도 하고
6개월은 너무 짧기도 하고
6개월은 한 줌 재가 되고
바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
아침마다 저승사자는 하얀 가운을 입고 찾아와
진료카드를 내밀며 속삭이지
한방에 끝내줄까?
6개월 동안 날마다 죽여줄까?
* * *
6개월이라?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이지만 날짜를 체감하는 법 역시 개인에 속한 일이라
자신이 하는 일이나 상황에 따라 체감이 달라질 것 같아요.
시인이 하필이면 6개월을 잡았을지...
알콜 중독이나 흡연, 약물 중독 같은 경우 처음 시작한 시점이 언제며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느냐
또 그 중량이 얼마냐? - 예를 들어 담배를 하루에 몇 갑, 몇 개피 피우느냐? 술은 주량이 얼마냐 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만, 몸에 인(印, 燐)이 깊숙히 배어 있는 정도와 해독할 수 있는 기간이 비례할 것입니다.
질병이 아닌 상태에서 체질을 바꾸려면 대개 6개월 정도 걸린다는 얘기를 들은 듯 싶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따라 또 체감 기간이 다를테지요.
학교에서 근무할 때, ' 매일 죽는 여자' ' 한달에 한번 씩 죽는 여자' 분기별로 죽는 여자' ' 일년에 한번 죽는 여자' 등
친한 여선생님들 끼리 우스개 소리로 별명을 붙여 놓고 서로 隱語로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 업무중 ' 일과' 가 있습니다.
보통 시간표 짜는 일과 병행하는데 시간표를 짜는 일은 일년에 한번 죽는 일이었습니다.
(이전 수작업으로 할때는 진짜 대형공사인데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짜서 다소 쉬워졌지만... 교과목뿐 아니고
'창의체험'이다 '자유학기제'다 해서 교육과정자체가 복잡해지면서 학교 하루일과표가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일과는 교사가 출장을 가거나 결근을 하면 그 시간 대강을 넣어야 해서 매일이 정신이 없지요.
또 매일 통계를 집계해야 하는 업무의 경우가 '매일 죽는 여자'에 속했습니다.
그 외에도 ' 학교축제나' ' 교생실습' ' 교과서 주문' 처럼 일년에 한번 하는 행사는 ' 일년에 한 번 죽는 여자'고
요즘은 시험 횟수가 줄었지만 이전 월례고사를 치를 때 평가담당자는 ' 한달에 한 번 죽는 여자' 이런식이었지요.
다른 어떤 집단보다 학교는 6개월의 의미가 컸습니다. 1학기, 2학기로 학기구분을 하고
그 사이에 충전기인 방학이 있으니까요.
각종 서류에는 3개월 이내 증명사진을 붙이는게 원칙이지만
공무원들의 경우 6개월 단위로 퇴직이나 전보가 있기에 금융업무를 본다든지 할 경우
신분변동에 대한 증명서를 내야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러니 ' 6 개월' 하는 기간은 보편적인 기간이지만 개인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요.
직업생활이 바쁜 사람들은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일수도 있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6년처럼 길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고요.
오랫 동안 직업없이 놀아서 ' 제발 일을 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6개월이 느리게 갈테고
정신없이 즐겁게 노는 사람은 6개월이 쏜살같이 지나가기도 할테지요.
'6 개월이면 한 줌 재가 되고 바람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 에 공감이 갑니다.
멀쩡하게 일상을 유지하던 사람이 6개월도 안돼, 심지어 2-3개월 만에 돌아가신 분 자주 목격했습니다.
급성 심장마비나 심근경색, 협심증 같은 심혈관질환과 폐암, 간암 같은 경우도 있었고요.
어린시절부터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타인에 비해 많이 겪었으면서 50대 초반까지만해도 일단 얼굴과 이름을 아는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하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그랬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이 돌아가셨다는 일' ' 한 생애가 마감했다는 일'은 참으로 충격이었는데
그 사이 生과 死에서 이제 死 쪽으로 균형이 기울었는지...이전보다 많이 담담해졌습니다.
인간의 생이 시작될 때부터 이미 결론이 나 있는 삶의 종착점이니까요.
언제 누군가, '몇살 쯤 어떻게 죽을지 봐 주는' 점쟁이가 있다고 보러간다더니... 그런 걸 맞추는 사람이 정말 있겠나
싶으면서 살아있는 노년층들에게는 정말 '궁금한 주제'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씩 그런 생각도 든다는 것이고... 결국에는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것이지요. ^^~
사진 :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멕시코, 페루 같은 남미...정말 개팔자가 상팔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