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 임솔아
감나무 밑에 떨어진 감이 보였다. 아무도
주워가지 않았다. 저 혼자 열심히
물컹물컹해졌다. 스멀스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썩어가는 감이 거들떠보지 않는
감이었다
이가 없다며 떡은 안 먹던 할머니는 이도
없으면서 쇠고기는 꿀떡꿀떡 삼켰다. 번번이
접시위에 남겨진 떡을 나는 꼭꼭 씹었다.
국화빵 사서 갖다 드리라고 아빠가 천 원을
주었다. 종이봉투 속에서 흐물흐물해져버린
살색 국화빵을 할머니 방문 앞에서 내가 다
먹어버렸다.
세상에 호상은 없는거라고. 모든 죽음은 다
슬프다고. 언니가 울었다. 호상은 호상이지.
나는 머릿 고기를 꿀컥 삼켰다. 이 비극이
박약했다.
늙으면 엄마가 더 열심히 씻을게. 왜, 엄마. 네가
노인 냄새를 싫어하니까. 가까이 가지도
않으니까. 노인 냄새를 싫어한 게 아니야, 엄마.
나를 사랑해준 노인을 만나본 적이 없었던 거야.
국화빵 한 봉지 사들고 돌아와 할머니 방에
들어간다. 할머니가 앉던 방석에 앉아 할머니가
덮던 담요를 덮고 국화빵을 먹는다. 냄새를
생각할수록 냄새가 사라진다.
* * *
시 외삼촌께서 돌아가셔서 김해로 조문을 다녀 왔습니다.
85세로 가족들과 집에 계시면서 외숙모 뒷바라지 받다가 며칠 아프다 돌아가셨다니
고인이나 가족의 복입니다. 영면을 바랍니다.
평소 장례식장에서 화환 같은 건 잘 안보는데 큰 아들이 ' 제일기획'에 근무한다더니
신문사 언론사 화환들이 많았습니다.
' 뉴스타파'로 익숙했던 최승호 PD 직함이 ' MBC 사장'으로 되어 있어 뉴스로만 보던 사실이 생활로
좀 가까이 다가와 색다른 느낌이었나 봅니다.
그 중 어느 신문사 사장 직함으로 된 화환을 보고 짝지가 ' 어! 대학 다닐 때 같은 하숙집서 생활했는데
사장 됐나보네.' 평소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우연한 기회에 여러 경로로 근황을 접하게 되기도 하나 봅니다.
물론 한 집단의 대표로 화환을 보낼 정도면 어느정도 사회적인 지위나 인지도가 있어야 하겠지만요.
모처럼 만난 친척들 다 70-80대라 60대는 젊은 층에 들어갑니다.
모임 마다 이렇게 나이 든 분들 비율이 많으니...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살다가 삶을 마감하는 죽음도 ' 박약한 비극'이 되었습니다.
막내 시이모님을 뵈니 시어머님 뵌 듯 반가왔고 다섯살 어린 손녀, 6달 된다는 손자가 이목을 끌고
너도 나도 한번 안아보겠다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만큼 죽음은 가깝고, 새 생명이 귀한 탓일 겁니다.
우리나라의 인구구성이나 젊음이들의 취업, 결혼, 출산의 서글픈 현실을 엿 본것 같았습니다.
친 인척인들 얼굴도 잘 모르는 조카, 질녀들 결혼식에 빼꼼 얼굴 내밀고 오는 일,
이렇게 돌아가시고 나서 영정에 절하고 오기보다 ' 살아 계실 때 한번이라도 들여다 봐야지' 하고 매번 다짐해
보건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함께 사는 가족이 아니면 아파서 피골이 상접하고 죽음이 드리운 얼굴보다 그냥 건강 하실때 모습으로 기억하자
하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
'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더 이상 예측 못할 불행만 아니라면' 하는 맘으로 오늘도 계속되는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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