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 조망
마추픽추서 앞으로 멀리 만년설이 보이기도 합니다.
1912년 첫 발견 당시 사진입니다
잉카인들은 마추픽추의 모든 시설들을 어떤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건설했다고 합니다. 즉, 그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인 상하, 좌우, 남성과 여성, 시간과 공간의 기준에 따라
적합한 위치에 건축을 했다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마추픽추와 마주보고 있는 와이나픽추(Huayna Picchu)라는 원뿔 모양의 봉우리는 잉카인들이
토템으로 신봉하는 두 동물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와이나픽추 봉우리를 앞에서 보면 퓨마의 형상이며 좌측의 세 개의 작은 봉우리는 새(콘도르)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고 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잉카인들에게 와이나픽추는 지상과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신성한 산으로, 그 곳에서 바라보이는 대지에
신성한 도시를 건설한 것이지요.
인간들이 무질서와 방탕에 빠지기 쉬우므로 태양이 다양한 색깔의 깃털을 가진 새를 보내
영혼들을 위무해 주기 위한 것이랍니다.
퓨마와 콘도르 모습이 보이시나요?
마추픽추는 에스파냐에 정복된 이후 5세기 동안이나 정글 안에 파묻혀 있었음에도 건물들의 지붕을 제외하고는
거의 훼손되지 않았습니다. 울창한 수림과 뾰족한 봉우리들, 우기에 퐁고 보에니케 골짜기는 사람들이 통과할 수 없을 만큼
험해서 자연적으로 마추픽추를 외부세계와 격리시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르밤바강과 주변 산악지대
잉카인들은 문자가 없어서 남아 있는 역사기록이 없기에 마추픽추를 언제, 왜 세웠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추측에 의한 여러가지 설이 존재하게 됩니다.
태양신의 후예로 숭배 받은 잉카제국의 아홉 번째 통치자인 파차쿠텍이 마추픽추를 건설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그 하나
하지만 만코 카팍이 “내가 태어난 곳에 세 개의 창이 있는 석조 벽을 세우라”고 한 명령과 마추픽추에 남아 있는 ‘세 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을 근거로 만코 카팍이 세운 잉카 최초의 수도라고 추정하는 학자들이 있고요
잉카인들은 돌을 다듬는 기술이 대단했습니다
어떻든 빙엄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이래 마추픽추는 차츰 그 신비의 비밀이 일부 벗겨지고 있긴합니다.
마추픽추는 제례의식의 중심지였고 약 1200명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테라스 형태의 농업구역과 도시구역으로
나눠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계단식 밭에서는 옥수수와 감자, ‘안데스의 초록빛 황금’인 코카 잎을 재배했고 가축도 따로 길렀던 것으로 봅니다.
200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유적지의 대부분은 가옥이나 저장고인데 지형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했고 화강암으로 건설했으며
여기 사용된 돌들은 600미터 아래의 깊은 골짜기에서 채취한 것으로 운반도구가 제대로 없었던 잉카인들이
악전고투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출입문은 사다리꼴이고 지붕은 3500미터 이상의 고산지에서만 자라는 이추(Ichu)라는 짚으로 만들어 덮었을 것으로
짐작되어 현재 복원된 건물의 지붕도 이추로 덮었습니다.
정방형의 공동 마당을 가운데 두고 열채씩 무리로 지어진 2층집들은 좁은 도로나 다소 돋운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동 마당에는 커다란 맷돌, 부피가 큰 농기구, 연료로 사용하는 라마의 배설물 저장소가 있었고 ‘추뇨(잉카인들의 주식으로
감자 말린 것)’를 만들기 위해 태양과 서리에 번갈아 노출되도록 감자를 널었으며 말린 고기 등은 줄에 매어 집 바깥에 매달았습니다.
고지대의 마추픽추에서는 물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며 식수와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지하수가 나오는 곳에서부터 돌을 이용하여 고랑을 만들었으며 잉카인들의 돌 다루는 뛰어난 솜씨는 잉카 옛지역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종교 건축물은 주 광장 둘레에 축조했으며 정교한 부조가 새겨져 있고 반원형의 탑이 있는 태양신전, 세 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제1신전 그리고 ‘왕의 묘’가 그것입니다. 왕의 묘는 잉카 최고의 신에게 헌정된 숭배의 장소로 추정됩니다.
잉카인들의 믿음을 표현하는 세 계단이 있는데 이는 지하(죽음) · 지상(현생) · 하늘(신)을 의미한다. 신전 근처의 왕의 궁전에는
식당과 거실 등이 있으며 마추픽추에서 유일한 화장실이 있기도 합니다.
마추픽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천문관측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건축물이다. 하나의 거대한 돌을 깎아 만든 인티와타나
(Intihuatana, 케추아어로 태양을 끌어들이는 자리)는 해시계와 유사한데 동짓날(남반구에서는 여름) 하루 동안 사제들은
여기에서 제물을 바치며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잉카인들은 태양이 두 개의 ‘의자’를 갖고 있다고 믿었으며 북쪽의 주의자와 남쪽의 보조의자가 그것입니다.
태양이 남쪽 의자에 자리 잡을 때인 하지가 한 해의 시작이었으며 전설에 따르면 잉카인들은 인티와타나에 이마를 대면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고 믿었습니다.
달의 신전은 유적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와이나픽추 중턱에 위치합니다. 천연동굴을 이용해 다섯 군데의 벽감을 만들고
부조를 장식했으며 신전 안에는 거대한 바위의 가운데를 파서 만든 옥좌가 있지만 전설 속의 황금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빙엄은 제단 구역에서 많은 인골을 발견했는데 대다수가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선택된 여자들이었습니다.
발견된 175구의 미라 중 80퍼센트가 여자였고 나머지 20퍼센트는 사제와 아이들이었습니다.
빙엄은 현장에서 잉카제국을 상징하는 도자기 · 금속 · 섬유 등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마추픽추가
어떤 정책적인 결단(군사 전략적 측면, 실용성 미비)에 의해 포기되었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반면에 세 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하부에서 수많은 도자기 파편을 발견했는데 이는 희생 또는 제사의 의식 중에
도자기를 떨어뜨렸거나 일부러 깨트린 것으로 추정 할수 있습니다.
' 마추픽추'를 왜 세웠느냐 하는 것은 그 도시의 기능이 무엇이느냐는 질문과 상통하는데요.
황금의 도시 ‘빌카밤바’이지만 도굴되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제의의식과 천문관측을 위한 종교의 중심지라는 설,
아마존과 잉카를 연결한 물류와 교역의 중심지, 심지어 잉카왕의 여름 별장이었다는 주장까지 있습니다.
아마존 상류에 살고 있던 부족과의 대치에서 전략적인 요새의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있으며 그런 여러가지 설
을 합친 복합적인 기능을 했을 수고 있습니다.
태양신의 처녀들, 즉 ‘아크야’를 위해 건설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은 발굴 당시 발견된 여성들의 시신에 근거합니다.
마추픽추가 빌카밤바가 아니라면 만코 2세의 보물은 아직도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그래서 지금도 페루에서는 빌카밤바를 찾으려는 탐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추픽추를 방문하려면 쿠스코에서 우르밤바를 거쳐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에서 기차를 타기도 합니다.
오얀타이라는 파차쿠텍왕 시대의 장군이 왕의 딸과 사랑에 빠져 오얀타이탐보로 피신했고, 화가 난 파차쿠텍은 수차례에
걸쳐 오얀타이 장군을 공격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 사랑을 인정했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이곳은 마추픽추로 들어가는 길목인 신성한 계곡의 입구인 동시에 군사적 ·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오얀타이탐보에는 군인들이 묵었던 숙소 · 종교시설 · 창고와 편의시설이 마추픽추와 유사한 형태로 갖춰져 있습니다
기찻길 옆으로는 아마존강의 원류인 우르밤바강이 흐르고 있으며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로 들어가다 보면
유적지 입구에 황금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탐험가로서의 명성을 얻은 빙엄의 표지석이 있습니다.
- 세계 불가사의 여행, 현암사 편집부, 북카라반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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