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해준 석유풍로

생게사부르 2017. 12. 3. 01:04

김해준


석유풍로



심지에 성냥불을 붙이면 검은 연기와 함께 석유 냄새가 올라온다. 그을음을 먹은 풍로는 비린 향을 품고 내가 지나온 공간의 한편에 자리 잡는다. 불꽃을 품고 배경을 흔드는 등으로, 또는 쌀 두 홉을 안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의 그림자로 어른거린다. 허기진 사람의 무력감을 해방하는 풍로는 그 공간에 갇힌 사물을 부조로 파낸다. 끝만 타버린 성냥개비 같은 머리통을 하고 잠드는 밤이면 나는 유년 시절과 같은 방향으로 머리를 누이고 잠이 든다.

사람을 끌어안고 잘 때와 같이 풍로의 온기 속에는 불씨가 존재한다. 타인의 숨소리를 받아주는 여유를 갖고 귀 기울이면 맥박이 느껴진다. 캄캄한 부엌에선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간다. 나는 그때의 기억으로 불꽃을 본다. 산막에서 야영을 하거나 계류낚시를 할 때면 나의 몽상들은 이미 꺼졌다고 생각했던 불씨에서 다시 일어난다. 바람을 받아주는 가슴이 텅 비었을 때 기억은 선명해진다. 그러면 완전히 연소되지 않을 불안감이 매캐하게 떠올라 기침을 일으킨다. 폐 쪽에 겹겹이 쌓인 그을음을 생각해본다. 불을 댕길 때마다 환해지는 얼굴의 뒤편에 타들어간 재가 분분하다.

그래서 사람의 내부에 진 얼룩은 때때로 섬뜩한 표정으로 나타난다. 얼룩은 깊어질수록 높은 고도를 갖고, 그 중심은 오름처럼 공허한 꼭대기를 갖는다. 풍로는, 눈앞에 없어도 불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끊임없이 재탄생하는 얼룩을 생산한다. 그 경계를 덧씌우며 인간은 성장한다. 내가 있는 자리도 결국 누군가 저질러놓은 불길의 끝자락이다.
풍로가 있던 자리는 포를 방열한 자리처럼 지저분했다. 시멘트를 발라놓은 조잡한 부엌에서 끓어 넘쳤던 음식들은 곧 그 집안의 내력이었다. 천장과 벽을 노르스름하게 물들이던 풍로는 밀집 거주지의 야경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는 그 낡은 풍경을 추억 속에 묻어놓고 살아간다. 그런 주방에서 물을 끓이면 아귀가 맞지 않는 철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구둣발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그리고 간유리 너머 실루엣에서 막연한 그리움을 느낀다.

지금 내게는 야숙할 때나 쓰는 풍로 하나가 있다. 생채기가 난 자리부터 녹이 슬어가는 게 보인다. 세월에 덴 흔적은 주름이 되어 지워지지 않는다. 뜨거운 시간보다 식어 있는 시간이 많은 풍로는, 먼지를 입고 어떤 감성적 필요에 의해서만 쓰이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가끔 육신이 지쳤다고 생각되면 속눈썹 같은 불씨를 켜놓고 밤을 기다린다. 기름이 다 되었을 때 단내를 맡으며, 내가 등진 사람과 내가 품은 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떠올린다. 맑은 물로 차 한 잔을 달이면 밤은 더디게 흘러가고 기억은 깊게 우러난다.

어둠 속에선 기묘하게도 산의 등줄기가 잘 보인다. 마른 잎을 깔고 앉아 지나온 길을 더듬어본다. 바람 소리가 잠든 이의 숨소리 같다. 내가 드리운 그림자 쪽으로 천천히 빛이 돌기 시작한다. 자리 잡은 지점이 잘 묶인 매듭처럼 머릿속에 남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능선 저편에서 오래 묵혀둔 태양이 검붉은 빛을 토해내며 땅을 밝힌다. 간밤 내내 켜놓았던 풍로는 밸브를 잠그자마자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꺼진다. 그리고 온기가 식어가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실몽을 꾸고 일어난 듯 차가운 대기가 피부를 팽팽하게 당긴다. 빛이 떠낸 풍경은 한 장의 판화처럼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남는다. 나는 그 장면의 바깥에 서 있다. 어릴 땐 무섭고 버거웠던 고요함이 이제 몸에 맞는다.

풍로를 켜놨을 때, 고스란히 떠올랐던 유년기를 가슴에 묻어두고 나는 그 시절에 대하여 다시 무심해진다. 바람 불면 꺼질 줄 알았던 추억들, 길을 내려가며 한 번쯤 뒤돌아보게 한다. 나는 그것을 창고에 넣어두고 오랫동안 찾지 않을 것이다.

 

 

 

*       *        *

 

 

' 석유풍로'라 석유곤로도 있었다. 쇠로 된 연통 손잡이를 잡고 심지를 돋우어 성냥으로 불을 붙이면 

' 홱' 돌며 둥글게 불이 붙었다.

석유 냄새가 났고 , 밥이고 국이고 끓일 때 들여다 보고 있다가 불을 조절 해 주지 않으면 밥물이 흥근히 끓어 넘치곤 했다.

이제 옛 추억 돋우는 장소에 일부러 비치 해 놓은 곳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물건들이다.

 

확연히 겨울이다.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때든 연탄이든 온돌 구들의 뜨끈뜨끈한 방은 이제 잘 없다.

불을 지피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온기도 오래오래 가던 난방이 그립다.

보일러는 금방 데워지는 대신 끄면 금방 식는다. 그것도 방바닥만 데워져서 윗 공기는 따로 데우는

난방이 필요하기도 하다.

 

근간에 따뜻한 구둘방에 가 본 적이 있었든가?

대학원 팀 모임에서 거제 집을 짓고 사는 지인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귤밭이 있고, 윗채 새로 지은 집에는 노래방 기계도 있던 집이었는데, 이전 부모님께서 사시던 아랫채에

구둘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누렇게 혹은 까맣게 갈라지기도 한 방바닥, 제대로 불을 피우면 그 열기가 사흘은 간다고 한 주인장 말이 빈말은

아닌 듯...방이 본격적으로 뜨거워 올 무렵...바닥이 너무 뜨거워 두꺼운 이불을 깔았고

윗목으로 피해서 잠을 잔 기억이 난다. 그게 언제적이었든가?

 

첫 발령 받아 갔을 때, 교무실에 톱밥 난로가 있었다. 누군가 고구마를 가져오면 교무실에 있던 보조 아가씨가

고구마를 던져 넣어 구워 내기도 했고, 간혹 도시락이 올라가 데워지기도 했다.

다소 번거롭고 불편했지만 참으로 화력이 좋았던 난로였다.

 

물론 그보다 더 소중한 기억은 수업 마치고 나온 동료교사들이 난로 주변에 모여 서서 불을 쬐며

담소를 나누던 정겨운 시간들...난로는 그렇게 추위를 타는 사람들을 끌어 모아 몸과 마음에 온기를 불어 넣었다.

 

유년의 추억을 돋우게 하는 석유풍로...시인처럼 많은 이들이 ' 창고에 넣어 두고 오래오래 찾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