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장옥관 꽃잎 필 때

생게사부르 2017. 12. 2. 00:38

장옥관


꽃잎 필 때



사람의 몸에서 향기가 날 때가 있다 둥근 사람은 둥글레 향기,
모가 난 사람은 모싯대 향기, 저마다의 빛깔과 향기로 다가 올 때
가 있다

쫓기다 쫓기다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고 생각 될 때, 뒤돌아
자기를 가만히 풀어 놓으면, 시간의 고랑을 타고 찰찰 흐르는 물
소리로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 떼 만나게 되지 몸 속 어디에선가
시작된 작은 소리는 천천히 온 몸을 적셔 나가다가 마침내 하나
의 큰 물줄기를 이루고 자잘한 꽃들이 몸 구석구석 피어나고 이윽
고 큰 꽃잎 하나 벙글게 되지

몸 줄기가 이끄는 길을 따라 발목을 적시며 흐르면 세상은 너
무 가득한 꽃 향기 내가 너를 적시고, 네가 너를 적시고 딱딱한
벌침을 힘껏 껴안는 꽃잎 속에서 아, 신음소리 터져 오른다

하나의 꽃잎이 벙글 때, 둥글게 모가 난 갖가지 향기 내게로
온다 밀리고 밀려 물가로 쫒겨 난 자잘한 꽃들, 자기를 풀어 큰
꽃 하나 벙글게한 그대 몸에서 힘껏 나를 빨아 당기는 알 수 없
는 힘이 내게로 온다

 

 

1955. 경북 선산

1987. '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 황금 연못 외

 

 

 

 

 

 

*      *       *

 

 

달력이 마지막 한 장을 남기고 있다.

 

사실 꽃은 필 때나 질 때나 한 결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한창 때만이 아니라 지고 난 뒤의 흉해 보일 자기 모습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숫자 만큼 많은 향기

사람을 적시고 사람에 적셔진 한 해

 

시작할 때나 마무리할 때나 한결 같은 마음으로

모든 사라진들, 사라질 것들도 사랑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 할 12월을 맞이하고 또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