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준
한 뼘의 해안선
마른 국화를 태워 연기를 풀어놓는다. 꽃잎이 불씨를 타고 오그라든다. 별들로 판서된 역사가 쇠락한 하늘 아래, 야경꾼의 홍채에선 달이 곪아간다. 통금의 한계에 닿아 부서지는 경탁 소리가 시리다. 첫 기제의 밤이 젖어간다.
된서리 맞고 실밥 모양으로 주춤주춤 경계를 얼려가던 복부에서 비린내가 터져 나온다. 절개했던 자리가 하얗게 번뜩인다. 새어머니는 훗배앓이 중이다. 뻘에서 태어난 입술에서 고동 소리가 샌다. 물려받은 반지의 녹이 지난 맹세로 생식한다.
태어난 해안에서 침몰해가는 유년. 바리캉으로 밀어낸 태모가 이방에 닿아 바람으로 분다. 가마의 계절풍은 성장을 멈추고, 내가 가졌던 땅을 만조로 삼키는 병풍이 펼쳐진다.
유쾌했던 이름이 글썽이며 타들어간다. 문간에서 날린 살비듬이 어떤 풍향을 탔는지 나는 모른다. 술잔에 내린 테를 삼켜 캄캄한 바다. 두 명의 어머니가 같은 연안에 이불을 깐다. 해진 안감에 귀를 묻고 손금이 크는 소리를 듣는다. 빛과 어둠이 범벅된 하늘이 몸 안으로 새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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