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
생의 한 단계 위를 다스리는 것들
좋아했던 그 여자애가 살던 그 옛집을 찾아가
오래 바라보다 천천히 돌아서렬 때
그 애를 똑 같이 닮은 작은 애가 흘기듯 사람을 올려다보
고 세차게 철대문을 닫는 그곳
어머니 또래의 겸손한 노인에게 자리를 내어주자
애타게 부끄러운 모습으로 두 아이의 젊은 엄마에게로
그걸 다시 양보한다 하여
그 자리에 아무도 앉지를 못해 비어 있던 그 얼마 동안
화엄사서 구례쪽으로 내려오는 마을 중간
거깃사람들 사는 납작한 허술한 모양으로 사람을 멈춰
세우던 그 집 작은 네모 속
가로로 쓰인 '마산의용소방대' 그 낯설고도 아는 이름
병원 복도 나무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며 길게 앉은
배부른 엄마 곁에 벌글벙글 매달린 어린 아드님의 손이
세상 잉모의 따뜻한 배를 스치다 어루만져서 서로 웃던
잠깐의 그 모습 그 생각
엄마 몰래 또 라면을 끓인 옆방의 세 딸과
막둥이의 숟가락 딸그락거리는 고요한 소리가 새어나는
여섯가구 지하실 지하방
밖으로 안으로 소리 없이 눈 쌓이는 일요일 위의 한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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