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복효근 호박오가리

생게사부르 2017. 11. 27. 00:10

복효근


호박오가리


여든일곱 그러니까 작년에
어머니가 삐져 말려주신 호박고지
비닐봉지에 넣어 매달아놨더니
벌레가 반 넘어 먹었다
벌레똥 수북하고
나방이 벌써 분분하다
벌레가 남긴 그것을
물에 불려 조불조불 낱낱이 씻어
둘깻물 받쳐 다진 마늘 넣고
짜글짜글 조렸다
꼬소름하고 들큰하고 보드라운 이것을
맛있게 먹고
어머니께도 갖다드리자
그러면
벌레랑 나눠 먹은 것도 칭찬하시며
안 버리고 먹었다고 대견해하시며
내년에도 또 호박고지 만들어주시려
안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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