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성은주 방

생게사부르 2017. 11. 11. 00:10

성은주





식물이 자라는 속도로 조금은 알 것 같은 그림을 그렸다

매일 색다른 물감으로 다르게 보이는 연습을 끝내면
차가운 문고리를 잡고 나갈 수도 있겠다

오랜만에 가방을 들었다
하나씩 짐이 늘어 날 때
누군가 자꾸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면 그림자가 어둡게 누워있을 뿐

무거운 가방을 끌다가
창문 너머로
구름이 비워지면서 점점 파래지는 하늘을 봤다

변명 가득한 가방 안을 들여다보는데
푸르르 떠는 목소리가 귀에서 바스락거렸다

돌아보면 가구들이 유령같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

벽에 기댄 감정을 끌어 내리느라
오후가 허물어진 줄도 모르고
오래도록 서 있다

내게 맞는 색을 더듬더듬 챙기는 동안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 시와 시학' 2015. 가을호

 

 

 

 

'시로 여는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승유 근무  (0) 2017.11.12
임영조 갈대는 배후가 없다  (0) 2017.11.12
성선경 마음에 단풍 들다  (0) 2017.11.10
천양희 그때가 절정이다  (0) 2017.11.09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무상  (0) 2017.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