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주
방
식물이 자라는 속도로 조금은 알 것 같은 그림을 그렸다
매일 색다른 물감으로 다르게 보이는 연습을 끝내면
차가운 문고리를 잡고 나갈 수도 있겠다
오랜만에 가방을 들었다
하나씩 짐이 늘어 날 때
누군가 자꾸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면 그림자가 어둡게 누워있을 뿐
무거운 가방을 끌다가
창문 너머로
구름이 비워지면서 점점 파래지는 하늘을 봤다
변명 가득한 가방 안을 들여다보는데
푸르르 떠는 목소리가 귀에서 바스락거렸다
돌아보면 가구들이 유령같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
벽에 기댄 감정을 끌어 내리느라
오후가 허물어진 줄도 모르고
오래도록 서 있다
내게 맞는 색을 더듬더듬 챙기는 동안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 시와 시학' 2015.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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