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임승유 근무

생게사부르 2017. 11. 12. 23:52

임승유


근무


  울타리를 지날 때 나도 모르게 쥐었던 손을 놓았다 나팔꽃의
형태를 따라 한 것이다

오므렸다가 폈다가
안에 든 것이 뭔지 모르면서 그랬다
살아 있다면

  뛰어다녔을 것이고 뛰어다니면 어지럽고 뛰어다니면 시끄러우

니까 쉬는 시간인가 보다 그러면서 붓 같은 걸로 살살 털어주면

서 붓을 갖다 놓으면서 문을 닫고 나왔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창백한 도감이었는지 모른다

 

  물가에 앉아서 생각에 빠져서 종이에 싸갖고 온 것을 풀어보다

가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것을 주머니에 넣어오다니 내

일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천천히 일어 날 때

 

쏟아지는 빛의 한 가운데였다

물감이 마르는 동안이라고 했는데

 

  아직 거기 남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여전히 내가 뭔가 쥐고 있

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 시로 여는 세상' 2015.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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