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 시내 버스투어
중남미 문명으로는 마야, 잉카, 아즈텍 문명이 있습니다.
그 중 쿠스코를 수도로 해서 안데스 고원지대에서 번성했던 문명이 잉카제국입니다.
잉카 제국은 만코 카팍과 마마 오클로가 1200년경 쿠스코에 도시를 건설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로 쿠스코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잉카 제국이 건설되기 훨씬 전인 8세기경이랍니다.
15세기부터 16세기 초까지 중남미 최대의 제국이 된 잉카 제국, 다음과 같은 건국 신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
잉카인들이 믿는 태양신 인티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문명을 전해 주기 위해 아들 만코 카팍과 딸 마마 오클로를
세상에 보냈답니다. 둘은 쿠스코 동남쪽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인 티티카카에서 태어나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여러 곳을 찾아다니던 중 쿠스코가 내려다보이는 우아나카우 언덕에 도착했습니다.
언덕에 도착한 남매는 태양신에게서 받은 황금 지팡이를 던졌고 하늘을 향하여 날아가던 황금 지팡이가
지금의 쿠스코 중심에 떨어졌는데 그만 땅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팡이가 들어간 그 자리가 쿠스코의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이라고 하네요.
쿠스코의 중심 아르마스광장
쿠스코(City of Cuzco)는 케추아어로 우리 몸의 중심인 ‘배꼽’이란 뜻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중심’이란 뜻도 갖고 있어요.
오랜 세월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평범한 도시 쿠스코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9대 왕
파차쿠텍(Pachacútec, 1438∼1471), 10대 왕 토파 유판키가 다스리면서 주변 국가들을 하나씩 정복해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쿠스코를 제국의 수도로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도로 건설이었습니다. 주변 나라들을 점령한 파차쿠텍 왕과
토파 유판키 왕은 나라를 쉽게 다스리기 위하여 로마 제국처럼 주요 도로를 쿠스코로 향하도록 만들었어요.
통신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왕의 명령을 전하고 물건을 거래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도로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잉카 제국의 최대도시로 정치, 행정, 종교적 기능을 갖춘 독특하고 복합적인 도시로 발달했으며
농업과 수공업, 공업의 산업 구역이 중심부와 확실하게 구분되는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쿠스코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연결된 도로는 자연스럽게 세상의 중심이 어느 곳인지 알게 해 주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쿠스코는 몸의 중심인 배꼽에서 세상의 중심이 되어 간 것이지요.
쿠스코에 건설된 광장과 궁전, 황금으로 장식된 정원 등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16세기(1532년) 스페인의 침입에 의해서 멸망합니다.
당시 원정 대장 피사로는 잉카의 왕을 비롯하여 많은 잉카인들을 죽이고 잉카 제국의 유물과 보물을 훔 갔으며
또 유럽의 전염병까지 전파시켜 화려한 문명을 자랑하던 잉카는 역사 속의 수수께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당시 자신들의 종교적 계시에 의해 흰 피부의 유럽인들을 ' 神' 으로 생각 한 탓에
저항은 커녕 지도자였던 '왕' 부터 신하들이 솔선 수범하여 침략자들을 '칙사' 대접을 하면서
스스로 황금을 갖다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황금의 도시 쿠스코를 점령한 스페인군은 엄청난 보물을 빼앗고 잉카인들이 지은 건물을 파괴한 뒤,
그 위에 바로크 양식 교회와 궁전 등 자신들의 건물을 세웠습니다.
오늘날 쿠스코에서 볼 수 있는 광장, 교회, 수도원 등은 스페인 사람들이 새롭게 건설한 유적지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도시의 기본 구조와 주춧돌을 비롯한 잉카 유적지 일부가 보존되어 있고,
잉카 문화와 스페인문화가 만나 새로운 유적지를 만들어 낸 결과일 것입니다.
쿠스코에서는 삭사이와망, 겐꼬, 뿌까뿌까라, 땀보마차이 등 잉카 4대 유적지를 돌며 원주민의 전통마을과
산에 있는 염전인 살리네라스 등을 버스로 하루종일 투어하는 관광 일정이 있었습니다만
뒷날 아침 일찍 마추픽추로 가기 위한 열차를 타야해서 반나절만에 돌아 볼수 있는 근교 투어를 했습니다.
2층 버스로 둘러보는 쿠스코시내는 걸어 다니면서 보는 느낌과는 또 달랐습니다.
버스투어 시작지점에서 내려다 본 쿠스코 골목길
오늘날 쿠스코에서 볼 수 있는 주요 유적지는 대부분 잉카 유적지 위에 새롭게 지어진 것입니다.
쿠스코에서 가장 큰 광장인 아르마스 광장은 잉카 제국 시대에 건설한 대광장 아우카이파타이고,
아르마스 광장을 바라보고 있는 대성당은 비라코차 신전 자리에 세워졌어요.
대성당과 마주 보고 있는 라콤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도 11대 왕 우아이나 카팍이 살았던 궁전이랍니다.
산타 카타리나 수도원과 박물관도 잉카 제국의 10대 왕인 토파 유판키가 살았던 태양의 처녀 궁전 터에 세워졌습니다.
황금으로 덮여 있던 태양의 신전 코리칸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에스파냐군대는 코리칸차를 점령하여 엄청난 황금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태양의 신전을 파괴하고 그 위에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건축물을 지었습니다.
현재 태양의 신전 자리에 세워져 있는 산토도밍고 교회와 부속 건물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초기에 지은 교회와 부속 건물들이 1860년 지진으로 모두 무너졌음에도 잉카인들이 지은 태양의 신전
주춧돌과 벽만이 대지진에도 무너지지 않고 원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해요.
오늘날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산토도밍고 교회와 코리칸차 고고학 박물관은 지진 이후에 다시 건설한 유적지입니다.
고산지대라 5시 좀 넘으니 해가 기울고 그늘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언덕에 오를 즈음 날씨가 싸늘해져서 2층에 앉아 있던 관광객들이 다 1층으로 내려 왔습니다만
끝까지 2층에 계셨던 분들...남미인들이셨는데...
평소 기후에 적응이 되어 옷을 야무지게 잘 입고 왔던지 후덕해서 추위를 좀 덜 타든지 ㅎㅎ
관광객을 대상으로 여정에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전통의식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모습입니다.
영혼이 자연과 교감하는 잉카 특유의 의식입니다.
근교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마무리 즈음 ' 아르마스 광장에서도 보이던 ' 흰 예수상'이 있는 곳에 잠깐 내렸습니다
쿠스코 근교 투어라 부담없이 끝날줄 알았는데 어둠이 내릴 때까지 계속되었고 돌아 내려올 때
두어군데 가게에 들렀는데 패키지가 아니고 개인적으로 모인 집단이어서 그런지
불편할 정도로 물건사기를 권하지는 않아서 부담이 적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열차를 타러 가야 했기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바로 들어와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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