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스코 아르마스광장 낮 풍경
쿠스코 주(스페인어: Departamento de Cusco)는 페루 남동부에 위치한 주로
부근 13개 군과 108개 구를 관할하며
우리가 간 곳은 그 주도인 쿠스코로 안데스 산맥 중앙 해발 3,399m 지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잉카 제국의 수도로서 '세계의 배꼽' '중앙부, 중심부'라는 뜻의 케추아 인디언어에서 이름이 유래된
쿠스코의 역사는 사실은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나 봅니다.
잉카신화에 의하면 티티카카호에서 태어난 만코 카팍과 그의 누이 마마 오클로가 1200년 경 쿠스코를 세웠다.
만코 카팍이 황금 지팡이를 두드리자 기적처럼 땅이 열리며 지팡이를 삼켰는데, 그 지점에 주춧돌을 놓아
도시를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쿠스코는 8세기 경에 이미 거주지가 형성된 곳이었다.
쿠스코가 잉카제국의 수도로 성장한 것은 1438년 만코 카팍의 18대손인 파차쿠티 왕 때이다.
파차쿠티 왕은 사피와 툴루마요 강에 수로를 만들고 두 강 사이 길고 가는 땅에 쿠스코를 건설했다.
도시는 잉카족이 신성시했던 동물 퓨마의 형상을 따랐는데, 퓨마의 머리 부분은 종교의 중심으로 필요시 요새로
사용했던 사크사우아만, 퓨마의 꼬리는 인공수로가 끝나고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인 푸마추판이다.
태양 신전 코리칸차는 퓨마의 허리, 제사를 지내던 무언카파타 대광장은 퓨마의 심장 위치다.
대광장을 중심으로 도로가 방사선 형태로 뻗어 있다.
잉카인들은 하늘은 독수리,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고 믿었는데, 이러한 세계관에 따라 쿠스코는
도시 전체가 퓨마 모양을 하고 있다.
16세기까지만 해도 동쪽으로 아마존, 서쪽으로 태평양, 남쪽으로 칠레, 북으로는 에콰도르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제국이었으며 그 중심에 쿠스코가 자리 잡고 있는셈입니다.
지형상 자연적인 요새를 형성하고 우루밤바 강이 흐르는 비옥한 농경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탓에
잉카 제국의 수도로 성장하였으며 잉카 로드를 중심으로 수많은 유적을 남겼습니다.
도시와 주변지역으로 우아타나이 강이 흐르며 사크사우아만 요새, 태양신전, 주거지 등을 비롯해서
잉카 이전시대와 잉카 문명의 유적들이 광대하게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1533년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군대가 쿠스코를 점령하여 약탈하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이식하고자 했던
스페인들은 식민지배 기간 잉카신전과 건축물을 파괴하고 대신 유럽식 광장과 성당 관청을 세웠지요
1650년에 발생한 지진은 도시를 거의 파괴했고 이후 바로크 건축양식으로 다시 재건되었답니다.
쿠스코는 한때 1백만 명이 거주한 적도 있었다는데 관광객의 유동인구가 많아서 그럴테지만 정확한 인구를
알기 어려운지 정보마다 다 다르게 나오는데 대략 70만 정도?
관광객 아닌 순 생활거주자는 20- 30만 정도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떻든 오늘날의 쿠스코는 유럽풍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스페인의 도시에 더 가깝게 느껴지지만
그들이 완전히 지우지 못한 잉카 제국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남미원주민 문화의 옛 영광을 되살려 보게 해 줍니다
관광도시자 상공업 중심지인 이 도시에서는 직물·양탄자·맥주가 생산되며 그림·조각·보석류·장식목공품 등 훌륭한
예술품을 다량 생산하고 있으며 교통의 요충지로서 비행기·도로·철도 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잉카 제국의 옛 수도이자 스페인군이 가장 먼저 정복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건설했던 곳,
남아메리카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손꼽히는 마추픽추가 있는 도시,
여행자들이 고산병의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쿠스코,
흥망의 희비가 엇갈렸던 옛 제국들의 자취를 더듬어 봅니다.
고모와 조카가 마치 서로 모르는, 지나치는 여행객처럼 뚝 떨어져 앉아 폰질(?)에 열중입니다.
테라스에서 차 한잔 하며 광장을 내려다 보는 여행객, 휴가의 여유로움... 여행은 바로 이 맛입니다.
알파카를 끌고 가는 전통복장의 원주민, 안데스 쪽에서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쿠스코에서는 알파카와 함께 사진을 찍도록 빌려주며 비용을 받기도 하는데
1달러라고 하고 찍고나면 더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어서...
캄보디아 같은 동남아서는 팁 1달러면 작지 않은데 남미는 유럽이나 미국인들 영향인지
성의표시라고는 해도 1달러는 좀 작은 금액으로 여겨져요.
팁 문화가 아닌 우리로서는 화폐단위도 익숙치 않은데다 가격도 계산이 쉽지않아 상당히 신경 쓰이는 부분인데
여유만 되면 듬뿍 주면 좋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어서고...
차라리 계산서에 봉사료 포함되어 나오는 게 부담이 덜 되더라구요.
물론 현지인이나 마찬가지인 딸은 물가를 잘 알고 팁을 계산해서 지불하면
우린 ' 얼마 줬어? '물어보는 정도였습니다
한국식당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갔습니다. 멕시코에서도 한인식당을 두번이나 찾아 갔고요.
여행이라 어쩔수 없이 적응은 하지만 입맛이 쉬 변하는 게 아니라서 한국음식을 먹으면 호사하는 것 같습니다.
라면에 김밥도 먹고 돌솥 비빔밤이나 김치찌개 된장찌개 먹는 것이지만요.
한국인 부부와 어린애가 있었는데 이런 외진 곳에까지 와서 살아가고 있다니 대단하기도 하고
이렇게 환상적인 곳에서 살고 있다니 부럽기도 했습니다만...스쳐 지나가는 여행객의 느낌과
실제 생활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같을지 어쩔지...물어보지는 못했는데...나중에 보니
두분 KOICA 출신으로 여기 살게된 배경과 지금 하고 있는 한국학문화원 일들이 방송으로 소개된 적이 있더군요.
점심을 먹고 딸이 미국 워싱턴서 국제기구 인턴할 때 알게된 페루 친구가 소개해 준 여행사를 찾아갔습니다.
마추픽추 가기 위한 서류를 받으러 갔는데...왕복 열차표, 아구아스칼리엔테스서 출발하는 왕복 버스표, 입장료등
네사람이나 되다보니 서류가 한 봉투였습니다.
남미와 스페인 문화가 합쳐진 건축양식, 몇 군데 방문하다보니 대체로 건물 특징이 나타나더군요.
그 앞에 방문한 박물관 건물도 이런 유형
여행사가 있는 건물 역시 마찬가지 였는데 한 가운데 분수나 정원을 두고 회랑으로 된 일이층에 여러가게나
주거공간이 들어 서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이층에 있는 초코렛 전문점을 둘러 보았습니다.
초코렛을 좋아하지 않지만 다양한 재료나 기발한 모양, 초코렛 만드는 조리 기구 포장모습 등은 신기했습니다
일층에 있는 전통의류 가게도 구경을 했구요.
숱하게 붙어 있는 가게 간판...
블럭으로 구획되는 주택이나 건물이 그들 역사의 오랜전통으로 내려 온 듯...이해를 돕기 위해
'멕시코의 역사' (멕시코 대학원 엮음. 김창민 옮김)라는 책에서 옮겨와 봅니다
기원후 200년-650년 경 도시 속성이 나타나는 떼오티우칸 시대 기록에
' 주민 대부분은 석조로 된 다가구 주거 건물에 살았다...각 주거 건물 안에는 여러 안뜰이 있었고
그 곳에서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또한 방들은 햇빛을 받았다. 중앙에 있는 뜰이나 몇개의 큰방에는
모든 거주자들이 모여 공통관심사라고 할수 있는 종교적 행정적 행사를 가졌다
평균적으로 각 건물마다 20여 가구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
초창기 국가 때 사회의 기저는 씨족 같은 협력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이들은 도시의 구역 같은 형태를 띠고
살았던 모양...땅이 넓었기에 가능했던 도시형태고 주거 공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둑판처럼 죽죽 곧은 길 , 골목에서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에 또 바둑판 같은 넓은 공간
" 한 주거 건물에 사는 모두가 동일한 일에 종사 했고, 게다가 친척들이었다.
다가구 건물 여러개가 모여서 한 구역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 구역안의 길들은 구역을 에워 싸고 있는 길보다 좁았다
또한 그 보다 더 상위 구역의획 단위로 여러개의 구역이 모인 구(區)도 있었다 "
총리공간이 한 블럭을 차지하고 있었고, 방송국과 전기 공급하던 회사가 한 블럭 혹은 몇 블럭을 차지하며
하나의 구역을 이루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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