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서대경 차단기 기둥 곁에서

생게사부르 2017. 7. 10. 00:29

서대경


 

차단기 기둥 곁에서


어느날 나는 염소가 되어 철뚝길 차단기 기둥에 매여 있었고, 아무리 생각 해봐도 나는 염소가 될 이유

가 없었으므로, 염소가 된 꿈을 꾸고 있을 뿐이라 생각했으나, 한 없이 고요한 내 발굽, 내 작은 뿔, 저물

어가는 여름하늘 아래, 내 검은 다리, 내 검은 눈, 나의 생각은 아무래도 염소적인 것이어서,엄마, 쓸

쓸한 내 목소리, 내 그림자 하지만 내 작은 발굽아래 풀이 돋아나 있고, 풀은 부드럽고, 풀은 따스하

고, 풀은 바람에 흔들리고, 나의 염소다운 주둥이는 더 깊은 풀의 길로 풀의 초록, 풀의 고요, 풀의 어

둠, 풀잎 매 달린 귀를 간질이며 기차가 지나고, 풀의 웃음, 풀의 속삭임, 벌레들의 푸른 눈, 하늘을 채우

는 예배당의 종소리, 사람들 걸어가는 소리, 엄마가 날 부르는 소리, 어두워져 가는 풀, 어두워져 가는 하

늘, 나는 풀 속에 주둥이를 박은 채, 아무래도 염소적일 수 밖에 없는 그리움으로, 우리 어릴 적 우리집이 있

는 철길 건너편, 하나 둘 켜지는 불빛들을 바라 보았다

 

 

 

시집 : < 백치는 대기를 느낀다> 2012. 문학동네

 

 

 

*       *      *

 

 

너무 어려서 기억이 아슴하긴 한데 사립문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철길이 지나는

동네에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詩에서처럼 염소를 비롯해서 개 등 짐승들이 희생을 많이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철길 건너 풀밭에 매어 놓았는데 어미와 새끼를 떼어 놓았던지, 아니면 기차가 불통소리를

내면서 달려오면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껴 그랬던지 철길을 넘으려다 그랬다고 해요.

 

세살 아래 여동생이 자박자박 막 걸음을 뗄 때, 엄마가 일하시느라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출근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나 봅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따라 나선 줄 몰랐고요.

 

막 열차가 달려 오는데 철길로 자박거리며 ...

동네 아저씨 한분이 나무 위에서 가지를 치고 계시다가 그 모습을 보긴 했는데

내려와서 구하러 갈 시간 여유가 안 되서 그냥 고개만 돌리고 말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지요.

 

열차가 지나자 어떤 불길한 느낌에 아이를 찾다가 엄마가 튀쳐 나왔고, 나무 위 아저씨가 재빠르게 내려왔는데

글쎄! '인명은 재천이라고 천운이랄지... 정말 운 좋게도... 침목사이에 웅크렸던 아이가 너무 작아서였겠지요.

잠시 기절했던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더랍니다.

...이마 위쪽에 기름이 묻었던 곳에 나중까지 머리카락이 쪼금 안 나긴 했지만 멀쩡했답니다.

 

문제는 아이가 열차에 치였다고 직장에 전화를 해 놓고 아이를 데리고 의원에 간 엄마가 아이가 좀 놀라긴 했지만

괜찮은 걸 알고는 다시 연락을 해 주지 않고 퍼져 놀아버렸다는 것이지요.

연락을 받지 못했던 아버지께서 하루종일 마음 조리다가 퇴근한 이후 그 사실을 알고는 한 바탕 난리가 났겠지요.

 

거짓말 같은 얘긴데... 우린 한번 씩 그 동생을 놀리곤 합니다.

 

'니는 명이 길거야! 열차하고 받혀서도 살아 난 아이잖아, 실제로 받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실 그건 대단한 사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만...

 

 

이즈음 서대경 시인의 좋은 시, 감상 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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