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박소란 아아,

생게사부르 2017. 7. 9. 08:19

박소란


아아,


담장 저편 희부연 밥 냄새가 솟구치는 저녁
아아,

몸의 어느 동굴에서 기어나오는 한줄기 신음

 

과일가게에서 사과 몇 알을 집어들고 얼마예요 묻는다는

게 그만

아파요 중얼거리는 나는 엄살이 심하군요

단골 치과에선 종종 야단을 맞고 천진을 가장한 표정으로

송곳니는 자꾸만 뾰족해진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아직

아침이면 무심코 출근을 하고 한달에 한 두번 누군가를

찾아 밤을 보내고

그러면서도 수시로 아아,

입을 틀어 막는 일이란

남몰래 동굴 속에 한마리 이름 모를 짐승을 기르는 일이란

조금 외로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동물도감 흐릿한 주석에 밑줄을 긋던 기억

아니요 말한다는게 또다시 아파요

나는 아파요

 

신경쇠약의 달은 일그러진 얼굴을 좀체로 감추지 못하고

집이 숨어든 골목은 캄캄해 어김없이 주린 짐승이 뒤를

따르고

아아,

 

간신히 사과 몇알을 산다 붉은 살 곳곳에 멍이 든 사과

짐승은 허겁지겁 생육을 씹어 삼키고는 번득이는 눈으로

나를 본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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