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김해준 상처

생게사부르 2017. 7. 6. 07:50

김해준


상처


옥탑은 섬이다. 주민들은 난간을 경계로 마주한다.
달은 집열등이 되어 고향이 그리운 사람의 눈을 빼앗고

이사 온 중국인 부부는 체위를 바꿔 가며 그림자극을 한다

 

곪은 달이 빠져 나왔다 모낭을 찢고 완숙이 된 염증 주위로 구름

이 멍들었다 대기가 천천히 말라 벼락을 뿌렸다 젖은 땅에서 풍장

냄새가 났다 어둠이 썩고 나자 짐승들이 눈을 떴다 가문 사회에 촉

을 틔우는 눈알들, 몇몇 고양이가 보호색을 입고 하얀 발로 달을 만

졌다 묽어진 빛이 눈가에 번졌다 통증이 천천히 실핏줄을 점거했다

충혈된 뿌리에 감긴 사물들이 선명해졌다 천공에 상처가 덧 씌워지

고 덜 여문 달은 새로운 무늬를 몸에 새겼다 헌 달은 부스러져 가는

순간에도 땅에 그림자 묘석을 올렸다 싸르륵 잔상이 퇴적했다 얇은

일력의 페이지 밑으로 다음 날이 비쳤다 여태 찢어버렸던 지평선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 상처는 어제의 나이테

를 둘렀다 과거가 간절한 이들은 제 흉곽에 상처를 심는다

 

 

 

- 2012.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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