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경
소박한 삶
아름다운 그녀는 자전거를 탄다 바람이 불면 셔츠자락이 펄럭인다 그녀는 텅빈 도
로를 달린다 가끔 소방차도 달린다 선명하게 붉은 사이렌이 그녀의 자전거를 스친다
아지랑이가 두 갈래로 갈라졌다가 그녀의 뒤에서 천천히 합쳐진다 텅 빈 도로 끝에서
서정적인 화재가 발생했다 서정적인 사건들이 신문에 났다 햇빛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
은 투명하고 작고 고요했다 솜털이 나 있고 매끄러웠으며 얼음처럼 차가웠다 소방관이
말했다 아름다운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간다 목욕탕 굴뚝에서 사는 사내가 그녀에
게 인사한다 그녀가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사내를 올려다 본다 사내에게 말한다 화
재가 발생했어요! 페달을 밟는 발이 빛난다 하얀 치마속 종아리가 투명하게 빛난다 사
내는 멀어져 가는 자전거에 대고 소리친다 투명하고 작고 고요한 불이에요! 사내는 소
리친다 멀어져 가는 그녀에게 소리친다 얼음처럼 차가운 불이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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