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일상

임승유 묻지마 장미

생게사부르 2017. 6. 23. 05:37

임승유


묻지마 장미



나는 달린다
넘어질 수도 없을 때
담장은 막아서면서 일으켜 세우는 알리바이다

한번도 쉬지 않고 늙어 가는 지구에서라면
언제든 손바닥을 펼칠수 있지 고개를 박고 나한

테서 나는 냄새를 내가 맡는날엔 태어나던 날의 비

명을 뒤집어 쓴다

누군가 빠져나갔다면
안에서는 제 몸을 힘껏 들었다가 놓는 이가 있었

다는건데

찌르는 힘으로
거의 뾰족해져서 일어날 때
손바닥을 떼기도 전에 먼저 달려 나가는 담장

나보다 먼저 일어나지 말라고 했잖아 !

신발을 구겨 신고 따라 나갔던 날엔 뒤꿈치가 빠

졌다 잡아 당기는 그림자가 없었다면 더 빨리 달렸을

거다 뺨으로 뺨을 때리는 잎사귀 입술로 입술을 틀

어막는 꽃잎
여름으로 끓어 넘치는 여름을 다 달렸는데도 담장

을 벗어나지 못하고

나를 앞지른 그림자가 나를 막아설 때
아무도 내 이름을 묻지 않는다

비명이 어깨를 짚고 서 있다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 할까봐>

                         문학과 지성사. 201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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